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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by 이룸


츠레가 우울증에 걸렸다. 츠레는 하루코가 남편을 지칭하는 말이다(츠레는 일본어로 동반자 혹은 짝이라는 뜻이다).


우울증에 걸린 이유는, 흔하디흔한 것이다. 도시인이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방식. 압박(stress)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 많은 개체가 모여 살게 되면 내적, 외적 압박이 심하게 마련이다.


특히나 예민한 사람일수록 압박을 강하게 느낀다. 츠레의 캐릭터는 우울증에 걸리기에 딱 알맞다. 완벽을 추구하는 결벽증적인 성격.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하루하루. 외국계 하청기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피말리는 경쟁. 기업은 성과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고객은 지불한 만큼의 만족을 사원에게 요구하고. 고객을 위해 기업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는 죽여야 하는 삶. 억압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귀환하기 마련이다. 억압된 것의 귀환. 많은 도시인들에게 그것은 곧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하루코는 츠레에게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말한다. 정말 현명한 여자다.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한다. 우울증이 깊어지면 자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고장 난 상태의 차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망가질 일밖에 없다. 우선은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천천히 수리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하루코의 직업은 만화가.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지 않는 만화가다. 츠레가 회사를 그만두자 살림은 빠듯해진다. 츠레가 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하루코는 자신의 일에 필사적이 된다. 이 정도 만화로는 안 되겠다는 말을 듣자,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제발 부탁드립니다." 간곡한 부탁을 하고,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는 편집인을 만나 일을 얻게 된다. 편집인과의 대화를 통해 조언을 얻고, 우울증에 걸린 남편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 많은 독자로부터 공감대를 얻는다.


고민을 가슴속에 담아두면 병이 되지만, 터놓고 이야기하면 실마리가 보인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속에 꼭꼭 쌓아두면 병만 깊어질 따름이다. 세상에 말 못 할 것은 없다. 이 세상에 단독자는 없다. 모두가 관계망 속에서 존재한다. 내가 지닌 것을 이 세상의 누군가는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병은 곧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오히려 건강한 상태가 지속되면 거만함과 오만함 속에 빠져들 수도 있다. 병은 곧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몸의 신호이다. 그러니 병에 걸리거든 혼자서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잘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누군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눠볼 수 있는 축복의 시간으로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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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사사베 키요시

출연 : 미야자키 아오이, 사카이 마사토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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