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보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얄밉게도 집요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질구레함을 제거하고 멋들어진 낭만이나 환상만을 보여주려 애쓰는 영화들에 지칠 때쯤이면 다시금 홍상수 영화가 그리워진다.
<북촌 방향>에서도 홍상수는 여지없이 홍상수식 일상을 영화화하고 있는데, 그 속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거나 생각해 보았을 일상의 단면이 들어가 있다. 그것이 홍상수 영화가 지니는 힘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홍상수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다. 매번의 영화가 홍상수식 일상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나 영화감독이라는 자신의 '권력'이 일상에서 자주 이용되고 있음을 느낄 때가 그러하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는 접어두기로 하자.
홍상수 일상의 주된 키워드는 '낭만적 거짓'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하며, 우연의 작용들을 엮어서 필연의 고리로 연결지으려고 한다. <북촌 방향>에서는 예컨대, 카페의 여주인을 보고 첫사랑을 연상하며, 그래서 그 여주인을 주인공은 욕망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의 욕정이 만들어 낸 판타지일 뿐이다. 여주인과의 관계 맺음이 낭만적 거짓으로 위장된 욕정에 불과하다는 것은,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여인과의 관계에서 이미 드러난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 주인공은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옛 연인을 2년 만에 찾아간다. 술을 마시면 원초적인 감정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다행히도 여자는 여전히 혼자 살고 있었다. 주인공은 여자와 다시금 관계를 맺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낭만적 거짓 속으로 함몰한다. "나에겐 너밖에 없어. 알잖아?" 여자는 남자의 일시적인 연기에 넘어가고 관계를 맺는다. 여자에게도 낭만적 거짓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낭만적 거짓마저 없다면 너무도 외롭고 단조롭고 메마른 일상만이 남겨지기 때문에.
남녀의 만남이란 그래서 온갖 낭만적 거짓의 경연장이다. 순간의 기분에 취한 말들의 향연. 결국 빈껍데기들의 공허한 만남일 뿐이다. 휘황찬란한 휘발성의 말들. 그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삶의 방식이 있겠다. 첫 번째는, 낭만적 거짓 속에서, 낭만적 거짓이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방식. 이렇게 산다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누군가와 만나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쫓으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삶에 젖어 살다가 혼자 있게 되면 공허함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두 번째는, 낭만적 거짓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낭만적 거짓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 가끔씩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하지만 다시 똑같은 삶의 길을 간다. 이것이 홍상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방식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인생은 고뇌의 연속이 된다.
세 번째는, 낭만적 거짓을 버리고 살아가기. 외롭고 단조로운 일상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평범한 삶의 방식을 버리고 힘들지만 자기만의 길을 가기. 이상적이지만 힘든 길이다. 그리고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다. 꾸준히 자신만의 내공을 갈고닦아야 한다.
감독 : 홍상수
출연 : 유준상, 김상중, 송선미, 김보경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