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병철
'즉각적인 향락'은 아름다울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것의 아름다움은 '한참 뒤에야' 다른 것의 빛 속에서, 귀중한 추억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지속성에, 사색적 종합에 의존한다. 순간적인 광휘나 자극이 아니라 사물들의 잔광, 사물들의 여운이 아름다운 것이다. '사물들의 영화적 흐름'은 아름다움의 시간성이 아니다. 조급성의 시대, 점적인 현재들의 영화적 연속은 아름다움과 진리에 접근하지 못한다. 사색적인 머무름, 금욕적인 자제 속에서 사물은 그 아름다움을, 그 향기로운 정수를 드러낸다. 그 정수의 구성 성분은 잔광을 발하는 시간의 침전물이다.
노동사회는 궁극적으로 강제의 사회이다. 노동은 자유롭게 만들지 않는다. 일의 명령은 새로운 노예사회를 낳는다. 의식의 완전한 자유는 의식이 일하라는 명령에서도 해방될 때만 가능하다. 일하라는 명령은 자유로운 인간이 누리던 삶의 형식들, 한가로움의 형식들을 완전히 소멸시킨다. 쉬지 않음으로서의 활동,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안식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어야 할 비안식이 이제는 절대적 요구가 된다. 오늘날 안식과 비안식의 관계는 완전히 전도되었다. 안식은 활동, 즉 노동을 위한 필수적인 회복과 이완의 시간이 된 것이다. -한병철, <시간의 향기> 중에서 -
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 왜 정신없이 쫓기듯 살고 있는가. 그러나 이러한 물음 자체가 사치스러운 것으로 자리매김된 지 오래다. 무언가를 얻어야 하고, 가져야 하고,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정신없이 쫓은 것 같은데, 얻은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커간다.
하위층은 중위층을 향해, 중위층은 상위층을 향해, 상위층은 최상위층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갈 뿐이다. 그러나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것처럼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채로 시간이 흐르고 늙어간다. 이 책에서 말하는 표현을 쓰자면, 시간에 향기가 없다.
이 시대의 레일 위에서 살아가는 한 향기 있는 시간을 영위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람이야 큰 문제가 없겠지만……. 아니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람이 과연 사색적인 삶을 살아가던가. 있는 사람은 더 가지려고 하지 않던가. 적게 가진 사람이 적은 것을 더 얻기 위해 애달아하듯,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은 것을 더 얻기 위해 애달아하지 않던가. 얻으려 하는 단위가 다를 뿐이지 생각의 패러다임은 똑같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향기로운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눈앞의 욕심에 애달아하지 않고 좀 더 큰 틀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많이'를 추구할 때 '더 적게'를 추구하며 살면 된다. 더 적게 벌고 더 적은 공간에서 살고 더 적게 소비하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많이'를 추구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히 할 때 '더 적게'를 추구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에 몰두할 시간을 많이 확보하면 된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가치 있는 것들 중에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있던가.
부자가 되려고 용쓰다가 실패하여 가난해진 것과 '최소주의'를 표방하며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마음에 끼치는 영향이 정반대다. 전자는 죽을 맛이지만 후자는 살 맛이다.
지은이 : 한병철
옮긴이 : 김태환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