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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by 이룸


나는 꿈에 지친 사람,

시냇물에 잠겨 비바람에 시달려온

대리석 트리톤.

하루 종일 나는

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책에서 미인 그림을 발견한 듯

눈을 맘껏 즐겁게 하며

아니면 가려듣는 귀까지도 즐겁게,

그저 지혜로움에 만족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

하지만, 하지만,

이것이 내 꿈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아, 들끓는 젊음이 내게 있었을 때

우리가 만났었다면!

그러나 나는 꿈에 잠겨 늙어가네,

시냇물에 잠겨 비바람에 시달려온 대리석 트리톤처럼.

- 예이츠,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 -


'늙다'는 동사이고, '젊다'는 형용사이다. '늙는다'는 말은 있지만, '젊는다'는 말은 없다.


'젊다'는 순간순간의 상태이지 변화의 과정이 아니다. '늙다'는 말에는 변화의 과정이 들어가 있다. 과거에는 젊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슬픈 것은, 다시 젊은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젊어 보일 수는 있어도.


그리고 '젊다'는 필연코 시간이 흐르면 늙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자연이고, 우리는 그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태양 아래 사는 한은.


그러나 인간에게는 욕망의 작용이 있어서 젊어지고 싶어한다. 그래서 꿈꾼다. 다시 젊어진다면……. 조금이라도 젊다면…….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꿈을 통해서나마 위안을 삼는다. 그 꿈을 가시화하는 것이 예술이다. 이 영화에서는 예술 중에서도 문학이다. 그러나 꿈은 물론 꿈일 뿐 현실이 아니다.


꿈은 모든 금지된 것들도 화려하게 놀 수 있는 무의식의 터전이다. 현실은 자아와 초자아의 공간이고, 그래서 현실에서는 꿈을 꿈으로써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다스리기가 필요하다.


꿈을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려 한다면, 현실의 모든 질서는 파괴되고 만다. 이 영화에서 이적요의 제자로 나오는 서지우의 캐릭터가 바로 그렇다. 현실과 꿈을 혼동하면, 현실을 잊고 무의식적 충동에 사로잡히면, 무의식의 깊디깊은 구멍에 잡아먹히고 만다. 그것은 곧 죽음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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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정지우

출연 : 박해일, 김고은, 김무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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