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이 되고 싶은 심리는 존재감을 갖고 싶어서이다. 그만큼 존재감을 못 느끼며 산다는 방증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청소년 시기는 억압의 시기이고, 억압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되기 마련인데, 가장 두드러진 게 '힘에의 의지'이다.
현대사회 이전처럼 남자, 여자로서의 성징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바로 결혼을 하는 세상에서는 억압의 강도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남자, 여자로서의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는 '청소년기'로 규정되고, '학생'의 신분으로 포섭되어 어른들 말씀 잘 들어야 한다는 집단의식이 주입된다. 청소년들은 아이와 어른의 상태 사이에서 심한 압박을 느낀다. 아이처럼 행동해서도 안 되고 어른처럼 행동해서도 안 된다.
세상이 요구하는 건 '공부짱'이지만, 모두가 '공부짱'이 될 수는 없고, 해서 '주먹짱'이 나타난다. 그것은 동물적 본능에 다름아니다. 원시 사회에서부터 있어 왔던 '힘에의 의지'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고 사회화 과정을 잘 밟아온 아이들은 공부에 몰두하지만, 애정이 결핍되고 사회화 과정이 잘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은 스스로의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주먹짱들은 집단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데, 그것 또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나 이 정도야, 하는 과시욕의 산물이다. 어른들 사회에서도, 분야를 막론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먹어주지' 않는가.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짱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내부적 요인이든 외부적 요인으로든. 특히나 존재 기반이 약하면 약할수록 무너지는 속도는 빠르다.
결국 모든 일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나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서 외부적 과시에만 젖어 살면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다. 짱이든, 대기업 총수든, 대통령이든 벗겨놓고 보면 별 차이 없는 동물에 불과하다.
이 영화에서 짱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만 자랐고, 애정이 결핍되어 있으며, 그래서 존재감을 갖기 위해 짱이 되었다. 그리고 친한 친구 두 명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산다. 하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친구를 공격하게 되고, 그리하여 친구 둘을 모두 잃게 된다. 어머니의 애정을 대신했던 친구들을 잃고, 집단마저 와해되고…… 그렇게 되자 존재의 이유를 잃는다.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받은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으리라. 내가 함부로 말하는 성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면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며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주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그런 성향이라면? 말조심하라고 충고하면 서로 의만 상하게 되고 관계의 단절까지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그럴 땐, 차라리, 웬만한 말에는 상처받지 않는 ‘마음의 맷집’을 키우는 게 어떨까 싶다. 은근슬쩍 농담으로 되받아친다든지 얼렁뚱땅 화제를 전환한다든지……. 그런데 상대방이,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며, “너는 그게 문제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또 공격을 감행하면 어쩌지…….
이청준의 단편소설 <치질과 자존심>에서는 ‘사족보행(四足步行)’을 통해 ‘자존심 길들이기’를 권유한 바 있다. 몸을 낮추고 살다 보면 마음도 자연히 낮아지리라는 이치인데……. 실행하기가…….
이래저래 인간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다.
감독 : 윤성현
출연 :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조성하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