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카 와일드
실제로 마음을 가장 옥죄는 것은 바질 홀워드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자신의 영혼이었다. 바질은 도리언의 인생을 망쳐 버린 초상화를 그렸다. 그건 용서할 수 없었다. 모든 악행을 저지른 건 바로 그 초상화였다.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중에서 -
‘1890’은 초판본임을 나타내기 위해 옮긴이가 붙인 것이다. 그동안 소개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성 윤리를 의식하여 수정한 작품이라고 한다.
현실이 만족스럽다면 예술은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즐겁게 살면 된다. 현실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사람은 만족의 세계를 갈망한다.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마음속에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그리며 살아간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그것을 ‘마음의 왕국’이라고 표현했다. “마음의 왕국, 그건 하늘에 있네. 하늘에 그 모형이 있단 말이네. 원하는 자의 눈에는 그 나라가 보이네. 그 나라를 보면서 그 안에서 살 수 있지. 그 나라가 실제로 존재하느냐 또는 앞으로 존재할 것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네. 그는 언제나 그 나라의 풍습에 좇아 살 따름이며 그 밖의 것을 본받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마음의 왕국’이 소박한 소망이거나 실현 가능의 세계라면 현실의 삶을 윤기 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현되기 어려운 세계를 꿈꾼다면 현실의 삶이 힘겨워질 게 확연하다.
이 소설에서 해리 헨리 경은 현실을 비교적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에 속하고, 바질 홀워드는 만족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해리 헨리 경은 꿈꾸는 세계에 대하여 도리언 그레이에게 설파하는데, 도리언은 그것을 현실에서 살고자 한다. 불가능의 세계를 얻으려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영혼을 팔아야 한다. 이 소설에서는 자신의 초상화가 흉악하게 변하는 것으로 나타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존재를 욕해본들 소용없는 짓이다. 자신의 삶은 다른 누구의 책임으로도 떠넘길 수 없다.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내 삶은 온전히 내 몫이다.
현실은 현실이고 예술은 예술이다(<영화는 영화다>라는 영화도 같은 맥락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현실을 예술처럼 살아갈 수는 있어도 현실이 예술 자체가 될 수는 없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마음의 왕국’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거나 예술을 통해 표출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제목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지은이 : 오스카 와일드
옮긴이 : 임슬애
펴낸곳 :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