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음악을 많이 좋아했고, 돈이 있으면 틈틈이 카세트테이프와 LP를 사 모았다. 언제부턴가 CD라는 게 나왔고, 카세트테이프와 LP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갔다. 자동차만 해도 카세트테이프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CD 플레이어가 대체했다. 카세트테이프는 오래 사용하다 보면 늘어지거나 엉키거나 하여 골치를 썩이기 일쑤였다. 그래서 모두 버렸다. 그러나 LP는 버리기 아까웠다. 작은 크기로 말끔한 소리를 들려주는 CD에 비해 LP는 크기도 크고 지직거리는 소리가 합류하기도 하지만 소장가치가 있었다. LP의 재킷은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들도 많았고 장식 효과도 있었다. 지직거리는 음도 정감이 느껴지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사람도 너무 깔끔하고 세련되면 차갑게 느껴지고 수더분하고 결점도 있어 보여야 인간미가 느껴지듯이.
언젠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멋들어진 카페를 차리리라,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그런 카페를……. 그런 마음으로 나이 50이 되도록 LP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CD 세상을 지나 MP3 세상, 그리고 어느덧 인터넷 세상이 되었다. 좋아하는 곡을 듣기 위해 돈을 들여 음반을 살 필요도, 시간을 들여 녹음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유튜브 같은 곳에서 언제든 마음껏 좋아하는 곡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그렇듯 빠르게 변화하건만 나의 삶은 20대 때나 50이 되어서나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언젠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은 항상 저 멀리에 위치한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이사할 때가 항상 문제였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사를 자주 다니며 살았는데, 그때마다 골치가 아팠다. 골치의 1위는 책, 2위가 음반. 부피와 무게가 만만찮다. 짐을 쌀 때도 골치, 정리할 때도 골치……. 그렇다고 해서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거래를 하자니 번잡하다.
5년 전, 1년 후면 다시 이사를 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무렵 당근마켓이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그래, 이참에 다 처분해 버리자, 마음먹고 턴테이블과 LP를 당근마켓에 올렸다. 턴테이블을 5만원에 올렸을 땐 팔리지 않다가 3만원으로 내리자 팔렸다. LP는 개당 1만원에 올렸는데, 비틀즈 음반만 팔렸다. 다른 음반들은 시간이 지나도 팔리지 않았다. 개당 8천원으로 내렸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5천원으로 내렸다. 그제야 연락이 왔다. 존 레논, 배드 컴퍼니, 알카트래즈, 잉베이 맘스틴, 게리 무어, 전인권, 조르주 무스타키, 너바나, 스콜피온스, 다이어 스트레이츠, 오지 오스본, 레나드 코헨, 크리스 디 버그…….
간헐적으로 팔리는가 싶더니 어느 시점부터 거래가 끊겼다. 뭐야, 가격을 더 내려야 하나? 4천원? 3천원? 안 될 말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안 팔고 말겠다.
한동안 거래가 없다가 어느 날 내가 올린 LP를 20만원에 몽땅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것도 자신이 사는 곳으로 가져다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뭐야, 바겐세일을 요구하면서 가져다주기까지 하라고? 처음엔 발끈했지만, 결국 그러기로 했다. 어쩌다 한 번씩 낱개로 5천원씩 팔게 되면 어느 세월에 다 팔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클래식 전집 36장을 낱개로 5천원씩 올려두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팔리지 않기에 모두 가져갈 경우 5만원이라고 해서 다시 올렸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4만원이면 사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자고 응답했다. 이제는 빨리 처분하자는 마음뿐이었다.
음반을 모두 처분하고 나니 홀가분한 한편으로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감정도 당연히 남았다. 특히나 애착이 컸던 음반들 같은 경우에.
짐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것들도 당근마켓에 올렸다. 행복나무 화분은 3만 5천원에 팔렸고, 테이블은 1만원에 팔렸다. 신발장, 이젤, 드럼 연습 패드와 스틱은 ‘무료 나눔’으로 처분했다.
그때 이후로 당근마켓을 이용하지 않았었는데, 4년 만에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사진액자 열 개를 개당 10만원씩 당근마켓에 올렸다. 며칠이 지나자 ‘당근’이 울렸다. ‘붕어섬 봄’을 구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장소를 알려주고, 만날 시간을 정했다. 약속 시간에 상대방이 나타났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었다. 액자를 받아들고 돈을 건네고 나서 상대방이 사진의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릴 때 제가 이곳에서 살았어요.”
며칠 뒤에 ‘지리산 이끼폭포’에 메시지가 떴다. 5만원이면 구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격 인하를 하지 않겠다고 답장했다. 그러자 아쉽다고, 알겠다고 상대방이 응답했다. 몇 달이 지나서 같은 사람이 같은 사진에 다시 메시지를 올렸다. 배달 가능하냐고 물었다. 자신이 초보운전자라 운전이 서툴다면서. 위치를 물어보니 자동차로 30분 정도의 거리였다. 배달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다시 네고는 절대 안 되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액자 만드는 데 5만원 들었고, 지리산 이끼폭포 갔다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안 팔리면 제 방에 걸어둘 생각으로 제작했습니다. 거래 안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죄송합니다. 오래 전부터 눈여겨보던 작품이라서 구입하고 싶네요.” 하면서 주소를 전송했다. 자동차를 몰고 약속 장소에 갔더니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나왔다.
그로부터 3개월 정도 흐른 시점에 ‘붕어섬 봄’을 구입한 사람이 ‘붕어섬 겨울’을 구입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다. 이번엔 아들을 보내겠다고 했다. 약속시간에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왔다. 액자를 건네고 돈을 받았다.
시간은 흘러 4개월 정도가 지났다. ‘지리산 이끼폭포’를 구입한 사람이 메시지를 올렸다. 지난번 구입한 액자를 아주 잘 쓰고 있으며, 같은 제품을 두 개 더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선물할 데가 있다고. 그럼 새로 주문을 하고 제품이 나오면 연락하겠다고 답했다.
‘지리산 이끼폭포’ 두 개를 다시 제작하는 김에 다른 사진 액자도 몇 개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촬영했던 사진들을 보면서 고르고 고른 다음 ‘지리산 이끼폭포’ 두 개에 여덟 개를 더해 액자 제작업체를 찾아가서 주문했다. 붕어섬 사진을 두 개 사 간 사람을 염두에 두어 ‘붕어섬 물안개’를 포함시켰다.
일주일 뒤에 제작업체에서 액자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가서 돈을 지불하고 액자를 차에 실은 다음 ‘지리산 이끼폭포’를 구입하겠다고 한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고, 지난번에 갔던 장소로 자동차를 몰았다. 이번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 나왔다. 지난번에는 딸이 나왔었다고 했다.
며칠 뒤에 ‘붕어섬 물안개’를 구입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역시나 붕어섬 사진액자를 두 개 구입했던 사람이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액자를 20개 만들었고, 그 중 여섯 개가 팔렸다. 두 사람이 세 개씩 구입했다. 제작에 들어간 비용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입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이 엿보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