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옮길 때마다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책장과 책들이다. 평소에는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지만, 이사할 때가 되면 어휴, 한숨부터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마무시한 장서가인 것은 아니다. 큰 책장 두 개와 작은 책장 한 개 분량이다. 다른 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피와 양이 크고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사할 때마다 책의 양을 줄이려고 애쓴다. 20년 전에는 헌책방 사장님에게 거의 대부분의 책을 선물했고, 10년 전에는 일부를 도서관에 기부했었다. 4년 전에 이사할 때도 누렇게 변색되거나 다시 떠들러볼 것 같지 않은 책들을 정리했었다. 이번에도 책장의 책들을 둘러보면서 궁리한다. 이제 더 이상 교습소를 하지 않을 것이므로 청소년용 책들은 당근마켓을 통해 ‘무료 나눔’을 진행해야겠다. 교습소를 하면서 수업용으로 샀던 책들을 뽑아서 한곳에 모아두었다. 세어 보니 70여 권이다.
나머지 책들 중에서 정리할 것은 몇 권 되지 않았다, 4년 전에 정리를 많이 했으므로. 다음으로 고를 책들은 이삿짐 트럭이 아니라 내 자동차로 직접 옮길 책들이다. 아끼는 책을 분실할 수도 있으니까. 4년 전에도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사라진 적이 있다. 분명 바구니에 담고서 트럭에 실었었는데 이사 후 책장에 책들을 꽂고 나서 살펴보니 <모모>가 보이지 않았다. 트럭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지나가던 누군가 슬쩍 집어간 게 아닐까 추정된다. 10년 전에도 교습소 문 바로 뒤에 놓여 있던 책장에서 누군가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냅다 도망친 적이 있었다. 책들을 죽 훑어보니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 사라졌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예전부터 있었는데, 그 말의 영향이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된 게 분명하다. 교습소에 다니던 학생들에게도 가끔씩 책을 빌려준 적이 있었는데, 다시 가져오지 않은 적이 많았다. 왜 안 가져왔어? 라고 말하면 “깜박했어요. 다음 수업 때 꼭 가져올게요.” 하고 대답하는데, 다음 수업 시간이 되면 가져오지 않는다.
여하튼 내 자동차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을 책장에서 골랐다. 첫 번째는 나의 첫사랑, 헤르만 헤세.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황야의 이리>. 10대 후반에 방랑하는 내 마음을 끌어당겼었다. 역시 첫사랑은 평생 잊기 어렵나 보다. 두 번째는 20대 초반의 나를 강타했던 프란츠 카프카. <소송>(예전에 출간된 번역본의 제목은 <심판>이었는데, <소송>이 적합해 보인다), <성(城)>.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라고 카프카는 말한 적이 있는데, 자신의 말에 부합하는 소설을 썼다. 세 번째는 도스토옙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와 <죄와 벌>.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헤친 소설가라는 생각이 든다.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뛰어난 소설들의 존재이유와 본질을 일깨워준다. 마루야마 겐지의 <달에 울다>와 <물의 가족>. 시적인 느낌을 주는 소설들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카프카가 소설로 도끼라면, 니체는 철학으로 도끼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나도 한번쯤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로망을 품게 한다. <그림자 그리고 빛을 쫓는 사람들의 어두운 면>. 그동안 읽은 심리학 책들 중에서 최고였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현실적 삶이냐 꿈을 좇는 삶이냐는 갈등에 대해 꿈을 좇아 살라고 말하는 책. <백석 시집>. 우리말을 이다지도 아름답게 구사하는 시인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한강의 책들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책.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의 책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 <베오울프>. 고대영어로 쓰여진 최초의 장시라고 하는데, 지금도 여전히 울림을 준다. 앙리 바르뷔스의 <지옥>. 밀집하여 살아가는 도시에서의 삶이 왜 끔찍할 수밖에 없는지를 잘 나타낸 책. 허버트 조지 웰스의 <모로 박사의 섬>.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과학기술과 결부되면 항상 소름 돋는 일이 펼쳐진다.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 인간의 못된 욕망을 약물을 사용해서 억제시킨다면 과연 평화로운 세상이 될까? 아무리 좋은 의도를 내세워도 강제로 행하면 파시즘이다.
30대 때까지만 하더라도 서점에서 잠깐 훑어보고서 책을 구입했었다. 그랬더니 읽고 나서 실망하고 책값이 아까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 40을 넘어서부터는 일단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본 다음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만 구입하게 되었다. 음악이 그렇듯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선호하는 책 또한 조금씩 달라진다. 새로운 인생 책을 발견하게 될 때 희열을 느낀다. 그것이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