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 직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아침
거울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이마에 자리 잡은 주름,
옅게 굳은 눈가,
그러나 그 안에 깃든 무너지지 않는 불꽃.
“이제야 내 얼굴이 좀 보이네.”
이전에는 늘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동생, 누나, 보호자였다.
하지만 지금은—그 누구도 아닌,
그냥 나, 영란.
그녀는 지금,
새로 지은 집에서 두 딸, 손녀와 함께 산다.
고요한 골목 끝,
햇살이 잘 드는 마당이 있는 그 집.
이 집을 처음 지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그 나이에 뭘 또 새로 짓어요, 그냥 있는 데 살아요.”
“자식들도 다 컸는데 뭐 하러 힘들게…”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다시 짓는 걸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이미 모든 걸 잃어본 사람만이
무언가를 짓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안다.
그녀는 맨손으로
가족을 다시 모았고,
재산도 모았고,
정의와 도덕을 세웠다.
심지어 마음까지도
다시 지었다.
요즘 그녀는 말한다.
“이제 나도 좀 살고 싶어.
일도 좀 줄이고, 음악도 듣고,
나답게 살고 싶어.”
아침이면 라디오를 켜고
소일거리로 농사를 하면서
양지바른 창가에 앉아
하루를 연다.
커피를 내리며,
예전엔 울면서 맞이하던 하루를
이젠 웃으며 시작한다.
딸이 다가와 말한다.
“엄마는 , 왜 이렇게 멋있어?”
그녀는 눈도 안 마주친 채 대답한다.
“인생에 처맞아봐야 멋있어지지.”
이년아.
그러곤 씩 웃는다.
예전처럼, 자기 안을 다 던져 웃던 그 시절처럼.
"아 엄마 그런데 왜 엄마는
아빠들이 잘못해서 헤어지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마지막까지
도와주면서 헤어지는 거야?"
"나는 그게 항상 불만이었거든."
“왜 항상 도와줬냐고?
… 너희는 아직 몰라서 그래.
내가 도와준 게 아니라, 그 인간들 수준에 맞춰준 거야.
그 인간들이 잘해서 같이 산 게 아니야.
못났으니까, 내가 대신 책임진 거라고.
내가 인간이니까.
끝까지 사람대접 한 번은 해줘야
나도 내 꼴 안 부끄럽거든.
근데 걔들이 그걸 또 씹고 뱉고 발로 찼다?
그럼 거기까지지. 그때부턴 내가 버리는 거야.
나는 쓰레기 줍는 인생은 살아도,
쓰레기처럼 살진 않아.
그거 하나 지키고 사는 거야. 됐냐.”
저 말에서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사람답게 산 거라는 걸,
영란은 요즘도 누군가를 도와주고,
여전히 밥을 챙기고,
여전히 남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먼저 챙긴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다.”
이건 이제 책에서 읽은 문장이 아니라,
그녀 영란이 온몸으로 쓴 문장이다.
그리고
자신의 친가족에게 버려지고, 자신의 피가 섞인 자식에게 버려진 ,
영란에게 버려진,
김성문은 요양병원에 남겨졌고,
그가 알던 영란은 더 이상 없어졌다.
그리고
매달리고 애원하던 그 사람은, 그 사람들 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다.
이제 영란은
자기 인생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 없이,
그저 자기답게.
그녀는 오늘도 말했다.
“이제 진짜, 내가 살고 있어.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에서
제일 젊은 순간일지도 몰라.”
그녀의 눈빛은 맑고 또렷하다.
과거에 무릎 꿇지 않았고,
배신 앞에서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렇게 영란은,
자기를 끝내 살려냈다.
이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영란, 그 이름은
슬픔으로 단련된 칼날,
그리고 희망으로 다시 빚은 불꽃이었다.
번외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 헤맸던 그녀의
잃어버린 큰 딸은
큰아들이
대학생활을 할 때 찾게 됐고
호주에서 좋은 남편과 자식 3을 낳고 잘살고 있다
첫째 딸이 엄마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이 과 오해들이 풀리면서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었고,
그리고 호주에 입양된 딸이 한국말을 할 줄 몰라
그녀는 딸을 찾은 날로부터 지금 까지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그녀는 누구보다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의리와 도덕을 행한 여자 이면서 살아 있는 위인일 것이다.
“사람이 말이지… 두들겨 맞고, 속고, 쌩 고생을 해도! 끝까지 자기 안 버리면?
그게 이기는 거야, 이 사람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