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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관계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말 한다고 다 말이 되는건 아니다.

by 아르칸테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착각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이 더 필요하다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
"우리가 얼마나 함께 했는데, 그 마음쯤은 알겠지."
"굳이 말 안 해도 느꼈을 거야."

우리는 가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애틋하다.
오랜 시간 함께한 가족,
서로를 잘 안다고 믿는 연인,
속 깊은 친구 사이에선
그 믿음이 더 단단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해는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더 자주 생긴다.
왜일까?

아무리 가까워도,

말하지 않으면 ‘몰라진다’


말을 생략하면,

처음엔 미소로 넘어간다.
두 번째는 오해로 흘러간다.
세 번째는 서운함이 쌓이고,
그다음은 ‘포기’가 찾아온다.


사람은 언어 없이 마음을 전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텔레파시가 아니라,
말이라는 다리를 건너야만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

“표정 보면 알겠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말 안 해도 느끼겠지.”
“그 사람이라면 알아챘어야지.”


이런 말들 속엔
기대가 들어 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말로 확인되지 않으면
상대에겐 부담이나 죄책감으로 변질된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자기 방식’으로 해석한다

“네가 그냥 조용해서 괜찮은 줄 알았어.”
“힘들면 말을 하지. 말 안 하니까 다 괜찮은 줄 알았지.”
“그날 기분 나빴던 거였어? 그걸 왜 이제 말해?”


이런 말들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벌어지는
해석의 엇갈림을 보여준다.

상대는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말하지 않은 진심은
전달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그 사람이니까 알아야지.”
“가까운 사이니까 말 안 해도 돼.”


하지만 사실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많이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되던 사이란
오해를 방치한 채 유지되는 관계일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은 독심술사가 아니다


그 사람도 힘들다.
그 사람도 자기 감정에 몰두해 있다.
그 사람도 실수할 수 있고,
생각보다 내 마음을 예민하게 읽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자주
“이 정도면 알 텐데”라고 말하는 건
사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상처받기 싫고,
거절당하기 싫고,
기대를 드러냈다가 실망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대한 다음,
말하지 않고,
상처받는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먼저 말해야 한다

“오늘은 조금 예민해. 미안해.”
“사실 그 말에 좀 서운했어.”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 그렇지만 싫어서가 아니라 정리가 필요해서야.”
“너한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고 싶어.”

이런 말들은
어색할 수 있다.
쑥스럽고, 때론 눈물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오해와 서운함과 단절의 고리를 끊어낸다.

말은
멀어진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그리고 그 말은,
먼 사이보다
가까운 사이에서 더 절실하다.

요약 메시지

‘말 안 해도 알겠지’는 가장 위험한 착각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많은 말이 필요하다.


우리는 해석이 아닌 언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관계는 천천히 고립된다.


불편함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

착한 사람이 아니라, 무서운 사람일 수 있다

불편한 걸 말하는 건
왜 이리 어려울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속 좁아 보일까 봐.”
“굳이 그 분위기를 깨고 싶진 않아서.”
“내가 좀 참으면 되니까.”
“말해봤자 어차피 안 바뀌니까.”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그 말들을 하고 나면,
혼자서 더 불편해진다.


불편함을 말하지 않는 건,


관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래도 너니까 이해할게.”
“아냐, 괜찮아.”
“나중에 말하지 뭐.”
“에이, 나까지 예민하면 안 되지.”

이런 말들엔 겉보기엔 배려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자기 감정을 억누른 채 관계의 무게를

혼자 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자꾸만 말하지 않고,
혼자 참고,
혼자 삭이다 보면,
그 감정은 나중에
폭발하거나, 끊긴다.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감정이 없어진 건 아니다.
그건 입을 닫은 감정이지,
끝난 감정이 아니다.


불편함을 말하는 건, 나를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오래가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면
말하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 혼자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아, 이 관계는 여기까지구나.”
“나는 이 사람한테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네.”
“어차피 말해봤자 내 감정은 안 들을 거야.”

그런 결론은
대화 없는 끝맺음이다.
상대는 이유도 모른 채 버려진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말해야 한다.
불편하다고.
서운하다고.
이건 나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감정의 칼을 갈고 있는 중이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다.
그건 잠정적 이탈이다.

속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고,
마음은 이미 몇 발자국 물러서 있다.
말하지 못하는 침묵은
때로는 가장 큰 공격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내가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왜 말하지 못할까?


거절당할까 봐 무섭다
“내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그래서 애써 웃는다. 나중에 혼자 운다.


분위기 깨기 싫어서

“지금 좋은 흐름인데, 굳이…”
그렇게 무수한 순간을 넘기며 관계는 쌓이지 못한다.


내가 잘못된 걸까 두려워서

“내가 너무 예민한가?”
감정은 묻는다. 너는 너를 믿어줄 수 있냐고.


예전에도 말해봤지만 안 통했기 때문에

반복된 무시에 마음이 굳는다.
“말해봤자 달라지지 않아”는 체념의 증거다.


그럼에도 말해야 한다

감정이 상하기 전에가 아니라,
상한 채로 오래가지 않기 위해서.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이건 좀 불편했어.”
“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려.”
“혹시 너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그렇게 느꼈어.”
“이건 이야기하고 싶었어. 우리 관계를 소중히 여기니까.”

말하는 건 어렵지만,
말하지 않아서 무너지는 건 더 아프다.

요약 메시지:

불편함을 말하지 않으면, 관계는 비대칭이 된다.


말하지 않는 건 착함이 아니라 두려움일 수 있다.


침묵은 때로 가장 날카로운 감정의 칼날이다.


불편함은 감정을 지키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첫 말이 될 수 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A.K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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