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허무의 문<>영광의 문

빛과 어둠의 순례

by 아르칸테

지옥의 길


그는 공허 속에서 발을 떼는 순간, 끝없는 침묵이 더욱 두텁게 내려앉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심장의 박동마저 멀리 희미하게 끊어지는 듯했다.
그 침묵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었다.

무게를 지닌 고요, 몸과 영혼을 짓눌러 뼈마디를 갈라내는 고요였다.

그리고 그 고요를 뚫고,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였다.
그러나 곧 그것은 비명 같았고, 낮은 울음 같았으며, 목구멍을 찢어내는 곡소리로 변해갔다.

그의 귀에는 믿어주었던 이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스며들었다.
“나는 너를 믿었는데 왜 나를 버렸지?”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멈추지 않았어?”
“너는 결국 우리 모두를 배신한 자야.”

목소리는 낮게, 그러나 점점 가까이 파고들었다.
그의 발밑에서, 어둠의 벽에서, 공허의 깊은 틈에서, 사방에서 동시에 울려왔다.
그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손을 막아도 소리는 더 선명하게 머릿속을 찢었다.

그때 환영처럼 얼굴들이 떠올랐다.
웃음을 주었던 친구가, 따뜻하게 안아주던 가족이,

믿고 따르던 이들이 하나같이 눈을 뒤집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원망과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그 표정은 그의 가슴을 찢는 칼날이었다.

“우리를 믿게 만들더니... 끝내는 배신했구나.”
“너 때문에 우리는 무너졌다. 너는 우리를 파괴한 자다.”

그는 무릎 꿇은 채 몸을 떨었다.
차라리 불길에 던져진다면 고통을 견디겠지만, 이 목소리와 이 침묵은 달랐다.
불은 살을 태우지만, 이 목소리는 영혼을 갉아먹었다.
그는 몸을 웅크린 채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만...... 제발 그만!!!!!!”

그러나 허무의 문은 멈추지 않았다.
공허는 다시금 입을 열었고, 더 많은 목소리가 합류했다.
믿어주었던 연인의 목소리, 따르던 제자의 목소리, 그가 외면한 약자의 목소리.

“너 때문에 나는 무너졌다.”
“너는 나를 외롭게 했다.”
“너는 끝내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그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이 허무는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가 살아오며 남긴 배신과 무책임,

외면과 침묵이 뒤엉켜 하나의 심연이 되어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깨달았다.
공허는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라, ‘잃어버린 모든 것’이었다.
침묵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라, 그가 무너뜨린 모든 신뢰의 무덤이었다.

그가 무너진 채 땅에 엎드려 있을 때, 공허의 심연이 갑자기 일렁였다.
끝없는 어둠이 흔들리며 한 점의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형체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그것은 그림자가 응고된 덩어리였고, 인간의 얼굴 같기도 했으며,

동시에 수없이 일그러진 가면들의 집합 같기도 했다.

그것은 곧 지옥의 사신이었다.
허무의 문을 지키는 자, 존재와 부재의 경계에서 절망을 먹고 살아가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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