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평화의 문<>분노의 문

빛과 어둠의 순례

by 아르칸테

평화의 문

천국의 길.

영광의 광장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금빛이 아니라 은빛의 문이었다.
그 문은 화려하지 않았고, 눈부시지도 않았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빛, 마치 오래된 달빛처럼 은은하게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상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더 이상 환호도, 찬양도, 기쁨의 노래도 없었다.
대신 고요한 숲이 펼쳐져 있었고, 바람은 살결을 스치듯 부드럽게 불어왔다.
멀리서 새들이 지저귀었고, 작은 시냇물은 졸졸 흐르며 자장가처럼 잔잔히 울렸다.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런 두려움도, 불안도, 갈등도 없는 이곳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그의 가슴은 따뜻한 이불 속에 몸을 파묻은 듯 가벼워졌고,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여기는.... 쉼의 자리인가.”

그가 중얼거리자, 나무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다. 여기서는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
고통도, 의무도, 선택도, 책임도 필요 없다.
그저 머물러라. 영원히 편안히 쉬어라.”

그의 입술이 떨렸다.
마치 기다려온 말 같았다.
그는 수많은 갈등을 지나왔다.
사랑의 집착, 기억의 유혹, 영광의 환호.. 그 모든 것들 속에서 흔들렸고 지쳤다.
그러나 이곳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평온이 있었다.

그는 풀밭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너무 지쳤다.”

그러자 공기는 더욱 부드러워졌고, 바람은 그의 눈물을 닦아주듯 스쳐갔다.
“그래, 이제 멈춰도 된다.
아무도 너를 탓하지 않는다.
아무도 너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이곳에 머물러라.”

그는 몸을 눕혔다.
푸른 하늘 아래, 흰 구름이 천천히 떠다녔다.
풀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고, 졸음이 그를 깊숙이 끌어내렸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들판에서 뛰놀다 풀밭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의 무구한 평화가 지금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풀밭에 누운 채,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숲 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처럼 순수한 웃음, 죄 없는 영혼의 웃음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손을 맞잡고 들판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옷도 장식도 없이, 태초의 아담과 이브처럼 순수하고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들꽃이 피어났고,

그 웃음은 공기를 밝히며 끝없이 울려 퍼졌다.

“이곳은.... 처음의 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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