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분노의 문<>평화의 문

빛과 어둠의 순례

by 아르칸테

그의 눈앞에서 불길은 단순한 화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형상이었다.
피와 살로 엮인 듯한 불꽃의 혀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 속에서 수많은 얼굴들이 일그러져 울부짖었다.

그 얼굴들은 그가 평생 억눌러온 분노의 잔해들이었다.
어린 시절 짓밟히며 참아야 했던 수치,

무시당했던 순간들,

배신당하고도 아무 말 못했던 기억들이 불꽃 속에서 하나하나 형체를 얻고 있었다.
그 얼굴들은 그를 노려보며 동시에 외쳤다.

“왜 그때 침묵했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너는 비겁했다! 너는 겁쟁이였다!”

불꽃의 얼굴들은 그를 붙잡고 살을 뜯어냈다.
그가 뿌리칠수록 불꽃은 더욱 커져, 온 사방이 붉은 피와 울음으로 뒤덮였다.

괴물 같은 분노는 더 크게 웃었다.
그의 불타는 입은 땅을 가를 만큼 커졌고,

그 속에서 쇳소리와 비명과 웃음소리가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너는 이제 나다.
나는 너의 억눌린 모든 고통이다.
너는 나를 부정했기에 이제 나에게 잡아먹힌다.”

그는 도망치려 했으나, 발밑은 이미 불타는 용광로였다.
붉은 용암이 솟구쳐 그의 다리를 감쌌고, 불길은 그의 몸을 꿰뚫었다.
살갗은 타들어갔지만, 고통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을 찢고 있었다.

그가 비명을 내지르자, 괴물은 그 입에 불꽃을 쑤셔 넣었다.
그의 목구멍은 타들어갔으나,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그 불꽃은 목소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눌린 울부짖음을 강제로 끌어내는 불이었다.

그는 숨이 막히듯 중얼거렸다.
“그만.... 제발 멈춰라..”

그러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형체들이 불길 속에서 기어 나왔다.
그가 증오했던 자들, 그를 무시했던 자들,

그를 배신했던 자들의 얼굴이 불꽃 괴물의 몸에서 튀어나와 그를 조롱했다.

“우리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다!”
“우리를 미워해라! 우리를 찢어라! 그래야 네가 살아남는다!”

그의 손은 스스로 불길을 움켜쥐고 있었다.
자신이 그 불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불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절망에 휩싸였다.
괴물은 그 사실을 알기에 더 크게 포효했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싸워도 소용없다.
너는 이미 나를 원한다!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았다면,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불길은 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혈관마다 불꽃이 흐르며 심장을 태웠고, 눈동자는 붉은 피로 가득 차올랐다.
그의 몸은 그 괴물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분노는 더 이상 외부의 괴물이 아니었다.
그의 내면, 그의 자아, 그의 본질이 분노 자체로 변해가고 있었다.

불길은 웃음처럼 터져 나왔다.
그 웃음은 공허한 광기였다.
그는 자신이 불타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불타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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