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철학자의 법정
제7위 악마 아몬 – 분노와 자기정당화
죄명: 분노를 무기로 삼아 스스로를 정당화한 죄
[악마 소개]
아몬.
옛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마에 이리의 송곳니를 가진 까마귀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분노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의 능력은 ‘불화의 불꽃’이다. 그는 작은 갈등에도 불을 붙여 분노로 타올라 상대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그 불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태운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정당화된 분노다. 그는 화를 낼 명분을 찾을 때 가장 큰 쾌락을 느낀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침묵의 거울이다. 그 앞에서는 그의 분노가 명분 없는 욕망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오늘 그는 피고석에 앉았다.
[법정 심문]
철학자(아르칸테): 피고, 네 이름과 죄를 말하라.
아몬: 나는 아몬. 나는 불의에 맞서 분노했다. 내 분노는 정의였고, 나의 분노는 옳았다.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했지만, 동시에 내 목소리로 안심했다. 나는 악이 아니라 심판자였다.
철학자: 네 죄명은 분노와 자기정당화다. 네 분노는 정의의 가면을 쓴 욕망이었다. 너는 불의에 맞선 것이 아니라, 네 분노를 위해 불의를 이용했다.
아몬: (비웃으며) 누가 정의를 판단하는가. 나는 분노했기에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내 불꽃이 아니었다면, 세상은 더 썩었을 것이다.
철학자: 아니다. 네 불꽃은 세상을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타인을 태우고, 너를 태운 파괴의 불꽃이었다. 네가 옳다고 믿은 순간, 이미 너의 분노는 욕망으로 바뀌었다.
아몬: (목소리를 높이며) 나는 옳았다. 내 분노는 나를 구한 무기였다.
철학자: 무기가 된 순간, 그것은 이미 죄였다. 분노는 순간의 힘일 뿐, 존재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네가 스스로를 옳다고 정당화한 순간, 진리는 네 곁을 떠났다.
아몬: (혀끝을 핥으며 웃는다)
진리라… 진리란 건 언제나 힘 있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장식품이지.
그대도 결국,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분노를 휘두르는 또 다른 나 아닌가?
철학자: (눈을 가늘게 뜨며)
나는 분노를 다스리는 자다.
너는 분노에 다스려진 자다.
그 차이를 모른다면, 네 불꽃은 다시 타오를 것이다.
아몬: (비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다스림이라… 얼마나 고상한 척인가.
너도 누군가를 태워야만 정의를 느끼지 않나?
내 불꽃이 세상을 태운다면, 그대의 ‘진리’는 사람의 영혼을 찢는다.
우리 둘 다 피 냄새로 숨 쉬는 존재야.
철학자: (조용히 일어서며)
맞다. 나 역시 인간의 언어를 쓰고, 인간의 피로 글을 쓴다.
하지만 그 피로 ‘회개’를 새긴다.
너는 그 피로 ‘정당화’를 새겼다.
그것이 우리의 갈림길이다.
아몬: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손톱을 세운다)
회개? 웃기지 마라.
그건 겁쟁이들의 자기보존이다.
죄를 인정하는 척하며, 사실은 벌을 피하려는 몸부림이지.
나는 그런 위선을 혐오한다. 차라리 불타 죽을지언정, 나는 꿇지 않는다!
철학자: (한 걸음 다가서며 속삭인다)
그래서 네 이름이 불꽃으로 기록되었다.
너는 꿇지 않았기에, 타올랐고,
타올랐기에, 결국 꺼졌다.
아몬: (입술을 깨물며 침을 튀긴다)
꺼졌다고? 아니, 나는 남는다.
사람들이 분노할 때마다, 나를 부른다.
그들의 입속에서 다시 깨어나, 또 다른 정의의 얼굴을 쓴다.
너희의 시대는 나 없이는 움직이지 않아!
철학자: (미소 짓는다)
그래.
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아직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지 마라, 아몬.
분노가 인간의 언어를 빌릴 때마다, 진리는 또 하나의 눈을 뜬다.
그리고 그 눈이 네 불꽃을 본다.
(철학자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리자, 법정의 공기가 식는다.
아몬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며, 그의 날개가 녹아내린다.
그는 울부짖지 않는다. 대신, 잔인한 미소를 남긴다.)
아몬: (속삭이며)
그래… 나를 심판해라.
하지만 네 안의 분노가 나를 잊는 날,
그때 너도 함께 죽을 것이다.
(불꽃이 꺼지고, 잔해만이 남는다.
철학자는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린다.)
철학자:
분노는 죽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의 얼굴을 잃을 뿐이다.
[심판]
철학자는 심판의 창을 들었다.
창끝은 분노를 찌르는 도구, 자기정당화의 껍데기를 꿰뚫는 무기였다.
철학자: 아몬, 이 창은 네 분노의 가면을 찌를 것이다. 분노로 자신을 세우려는 자는 결국 이 창 앞에서 무너진다.
창이 번개처럼 내리꽂히자, 아몬의 까마귀 날개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이리의 송곳니가 갈라지고, 그의 눈동자에서 튀어나온 분노의 불길이 꺼져갔다.
분노로 불타던 그의 몸은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아몬: (피를 토하며 비틀거린다)
하, 하하하… 그게 다인가?
너희 철학자들은 늘 그렇지.
말 몇 마디와 빛나는 무기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그의 부러진 송곳니 사이로 검은 피가 흘러내린다.
그러나 그 피는 마치 살아있는 듯, 바닥 위에서 끓으며 웃는다.)
아몬:
봐라, 이게 인간의 피다.
네가 심판이라 부르는 그 정의의 창도, 결국 이 피로 만들어졌지.
너희는 나를 찌르지만, 그 순간마다 나를 낳는다.
분노가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너희의 정의는 나 없이는 숨도 못 쉬어.
철학자: (얼굴을 굳히며)
그건 진리의 피가 아니다.
그건 너의 잔재, 불안의 찌꺼기다.
아몬: (비웃으며 고개를 든다)
불안? 그게 바로 너희의 신이지.
너희는 진리를 두려워하고, 침묵을 견디지 못해 나를 부른다.
내 불꽃은 너희의 고백이야.
나는 죄가 아니라, 고백의 그림자다.
하! 나를 죽인다고 깨끗해질 것 같나?
오히려 더 정당해진 분노가, 네 안에서 다시 자랄 것이다.
(아몬의 몸이 갈라진다.
그러나 그 틈새에서 또 다른 입들이 생겨난다.
그 입들은 사람의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는 맞았어.”
“저 사람은 틀렸어.”
“내가 화내는 건 이유가 있어서야.”
철학자: (창을 다시 든다)
그 입들은 너의 자식들이군.
정당화의 씨앗.
아몬: (비웃으며 손을 벌린다)
그래! 나는 사라지지 않아.
사람이 변명하는 한, 나는 살아있다.
나는 회의장의 목소리,
SNS의 분노,
정의감에 취한 군중의 박수 속에 숨어 있지.
(그의 눈이 마지막으로 번뜩인다.)
아몬:
나를 죽인다고 생각하지 마라, 철학자여.
너희가 누군가를 향해 “옳다”고 말하는 그 순간,
나는 미소 짓는다.
그리고 다시 깨어난다.
(그 말이 끝나자, 아몬의 몸이 검은 재로 흩어졌다.
그러나 그 재는 바닥에서 천천히 피어올라, 법정의 벽에 스며든다.
불빛이 잠시 깜박이며, 그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남는다.)
“정의는 언제나 나의 이름으로 불타오른다…”
[귀환]
불꽃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는 무릎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분노로 나를 정당화한 죄인이다. 이제는 불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진리를 찾겠다."
[교훈]
분노는 순간의 무기일 뿐, 존재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정당화된 분노는 정의가 아니라 욕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