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철학자의 법정
죄명: 충성을 가장하여 배신한 죄
[악마 소개]
발레포르.
옛 기록에 따르면 그는 사자의 몸과 인간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며,
도둑들을 유혹해 주인에게 충성하는 듯하다가 결국 배신하게 만든다.
그의 능력은 ‘위장된 충성’이다. 그는 믿음을 약속하고, 충성을 맹세하며,
상대가 안심하는 순간 등을 찌른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약속을 믿는 눈빛, 곧 배신 직전의 순수한 신뢰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끊어지지 않는 신뢰의 사슬이다.
그것은 그의 거짓 충성을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오늘 그는 피고석에 앉았다.
[법정 심문]
철학자(아르칸테): 피고, 네 이름과 죄를 말하라.
발레포르: 나는 발레포르. 나는 충성을 가르쳤다. 사람들은 나를 따르며, 나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러나 충성은 이용해야 빛난다. 배신 없는 충성은 의미가 없다.
나는 단지 인간의 본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철학자: 네 죄명은 충성 위장과 배신이다. 충성은 약속을 지키는 힘인데,
너는 약속을 무기로 삼았다. 네가 드러낸 것은 본성이 아니라, 타락이다.
발레포르: (비웃으며) 타락이라니. 사람들은 언제나 배신한다.
나는 그저 먼저 행동했을 뿐이다. 나는 약속의 허망함을 보여주었다.
철학자: 아니다. 너는 약속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배신은 남을 속이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이 다시는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독이다.
발레포르: 하지만 충성은 늘 가식이다. 누구도 끝까지 지키지 못한다. 나는 진실을 보여주었다.
철학자: 진실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신뢰를 파괴한 것이다. 신뢰가 없다면 공동체는 무너지고,
인간은 고립된다. 너의 죄는 공동체를 찢고, 사람들을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한 것이다.
발레포르: (비웃으며 몸을 젖힌다) 철학자여, 그대도 결국은 나와 다르지 않다.
그대는 진리를 말하며 사람들을 이끈다. 하지만 그들이 그대를 믿는 것은,
그대가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들이 믿는 것은 ‘그대의 철학’이 아니라, ‘그대를 믿는 자신’이야.
나는 단지 그 환상을 일찍 깨뜨렸을 뿐이지.
철학자(아르칸테): 네 말은 교묘하나, 그 안엔 독이 있다.
네가 사람들의 신뢰를 이용했을 때, 그건 진실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신뢰를 조롱한 것이다.
그대가 만든 배신은, 진실의 폭로가 아니라 관계의 살해였다.
발레포르: (미소를 짓는다) 살해라니, 그건 과장이지.
나는 오히려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들은 나를 통해 알았다 아무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걸.
그 불신이야말로 진짜 자유 아닌가?
신뢰란 속박이야. 서로 묶여 사는 족쇄일 뿐이지.
나는 그 족쇄를 끊어주었다.
배신은 해방이야.
철학자: (단호하게) 아니다.
그건 해방이 아니라 고립이다.
네가 끊은 사슬은 속박이 아니라 ‘연결’이었다.
믿음이 없는 자유는, 단지 방황일 뿐이다.
그 자유에는 ‘방향’이 없다.
발레포르: (웃으며 고개를 기울인다) 방향이라…
방향이란 결국 믿음을 이용하려는 자가 만드는 거짓 길이야.
신뢰는 거래야, 도덕은 포장이지.
나는 단지 그 껍데기를 벗겼을 뿐이야.
그대도 언젠가 알게 될 거야.
사람들이 그대를 따르는 건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두려워서야.
그대가 배신당하는 날,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철학자: (잠시 침묵 후) 그 말은 예언이 아니라 협박이구나.
너는 언제나 그렇게 상대의 신념을 흔들어 무너뜨린다.
그들의 확신을 조롱하고, 불안을 부추기며, 신뢰를 ‘약점’으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너의 방식이다 가스라이팅의 악마다.
발레포르: (조용히 웃으며) 아니, 나는 단지 거울이야.
나는 보여줄 뿐이지.
그들이 믿는 자를 두려워하고, 의심 속에 안도하며,
배신당하길 원하면서도 다시 신뢰하는 그 모순된 본성 말이야.
철학자: (한 걸음 다가서며) 그대의 거울은 진실을 비추지 않는다.
그건 왜곡된 반사판이다.
그대는 인간의 ‘불안’을 확대시켜, 신뢰의 가치를 파괴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불안 속에서도 서로를 믿으려 애쓴다.
그 애씀, 그 약함이야말로 도덕의 시작이다.
발레포르: (비웃으며) 약함을 찬양하는군.
결국 그대의 철학도 불안에 기생하잖아.
사람들이 흔들려야 그대는 빛날 수 있다.
나는 그걸 알고, 그걸 이용했을 뿐이야.
철학자: (냉정하게) 너는 이용했지만, 깨닫지 못했다.
믿음은 결코 약함이 아니다.
그건 불안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선택이다.
배신은 본성의 드러남이 아니라, 선택의 포기다.
그대는 인간의 본성을 말하지만, 인간의 용기를 모른다.
발레포르: (미소가 사라지며, 눈빛이 흔들린다) 용기라…
그것은 언제나 배신보다 늦게 온다.
철학자: 그래도 온다.
그 늦은 용기가 세상을 다시 묶는다.
그리고 그 묶임이 있을 때, 네 힘은 사라진다.
(법정의 공기가 서서히 흔들린다.
발레포르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며,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린다 “나는 믿었는데…”, “그도 결국 나를 떠났지…”)
철학자: 발레포르, 네 죄는 신뢰의 거짓 교사였다.
너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위험을 가르쳤지만, 그 위험 속의 의미는 가르치지 않았다.
너의 교훈은 공포였고, 그 공포는 공동체를 무너뜨렸다.
그대의 거울을 깨부수겠다.
발레포르: (웃으며 속삭인다) 거울은 깨져도 반사한다, 철학자여.
그대의 눈에도 내 그림자가 비칠 것이다.
[심판]
철학자는 신뢰의 사슬을 높이 들었다.
그 사슬은 약속과 믿음을 잇는 끈이자, 배신을 묶는 도구였다.
철학자: 발레포르, 이 사슬은 네 거짓 충성을 묶어 파멸시킬 것이다. 신뢰는 네가 파괴할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다.
사슬이 그의 몸에 감기자, 발레포르는 몸부림쳤다.
그의 사자의 몸은 포효했으나, 사슬은 단단히 조여 들어갔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맹세의 말들은 끊어지고, 거짓된 약속들이 하나씩 부서졌다.
마침내 사슬이 조여지자, 그의 몸은 힘을 잃고 무너졌다.
발레포르: (숨을 헐떡이며) 풀어라…! 나는 충성을 가르쳤다…! 나는 신뢰의 법을 알았다…!
(몸부림치며 사슬을 뜯어내려 하지만, 쇠사슬은 점점 더 깊게 살을 파고든다. 그의 팔과 가슴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온다.)
철학자(아르칸테): 너의 충성은 가르침이 아니라 속임수였다.
너는 신뢰의 언어를 흉내 내며, 약속을 도구화했다.
그 결과, 신뢰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되었고, 약속은 무기가 되었다.
이제 그 죄가 네 살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발레포르: (비명을 지르며) 나는… 그저 믿음의 허망함을 보여줬을 뿐이야!
(사슬이 목을 감싸며 천천히 조인다. 그의 혀가 검게 변하고, 눈에서 피눈물이 흐른다.)
그들은… 어차피… 날 믿지 않았어…
나는… 그들의 본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라고…!
철학자: (조용히) 아니다.
그들은 너를 믿었고, 너의 배신을 통해 세상을 잃었다.
너의 손끝에서 신뢰는 조롱당했고, 너의 말 속에서 약속은 값없이 버려졌다.
그대의 죄는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신뢰 자체의 모독이다.
(사슬이 발레포르의 몸 전체를 휘감으며, 불길 같은 붉은 빛을 뿜어낸다.
그의 사자의 몸이 갈라지고, 살점이 뜯겨 나가며, 안에서 수백 개의 손이 튀어나와 사슬을 붙잡고 저항한다.)
발레포르: (괴성을 지르며) 안 돼! 나는 묶이지 않는다!
신뢰는 항상 배신으로 끝난다! 나는 그 진실을 지켰을 뿐이다!
(그의 입에서 새하얀 빛의 파편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그가 했던 맹세의 조각들이다.)
철학자: 그 빛이 바로 네가 더럽힌 약속이다.
그것들은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고 있다.
(사슬의 빛이 점점 강해지고, 파편들이 사슬 속으로 흡수된다.)
발레포르: (사슬에 묶인 채 절규하며) 나를 믿었던 자들이여…!
그대들도 결국 나와 같지 않았나…!
그대들도 이용하고, 의심하고, 떠나지 않았는가…!
왜 나만 심판받는가!
철학자: (눈을 감으며)
그들은 실수했지만, 너는 의도했다.
그 차이가 너를 구원하지 못하게 한다.
(사슬이 마지막으로 조여들자, 발레포르의 몸이 일그러진다.
그의 인간 얼굴이 찢어지며, 안에서 진짜 얼굴 — 한없는 공허와 욕망의 형체 가 드러난다.
그 얼굴은 울부짖으며 공기 속으로 녹아내린다.)
발레포르: (목소리가 울리며 사라진다)
믿음은… 언젠가 너도 배신할 것이다… 철학자여…
너의 제자들이… 네 이름으로… 거짓을 맹세할 것이다…
(법정의 공기가 식어간다.
사슬은 바닥에 떨어져 차갑게 식고, 그 위에는 발레포르의 흔적처럼 남은 검은 재가 흩날린다.
그 재는 희미하게 사람의 목소리로 속삭인다.)
“나는 믿었다… 그를 믿었다…”
철학자: (고개를 숙이며)
신뢰는 한 번 부서져도, 다시 세워져야 한다.
그 믿음을 회복하려는 자들만이, 진실의 사슬을 다시 쥘 수 있다.
(법정의 빛이 꺼지고, 공허한 울림만이 남는다.
철학자는 사슬을 들고 천천히 돌아선다.
그의 손에는 아직 따뜻한 온기 믿음의 마지막 불씨 가 남아 있었다.)
[귀환]
사자의 몸은 사라지고, 한 인간만이 남았다.
그는 사슬에 묶인 채 고개를 떨구며 속삭였다.
"나는 충성을 위장하고, 믿음을 배신한 죄인이다.
이제는 약속을 무기로 삼지 않고, 진실로 지키겠다."
[교훈 요약]
배신은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는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독이다.
신뢰를 깨뜨린 순간, 존재도 함께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