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철학자의 법정
죄명: 스스로를 파괴하는 완벽의 강박
[악마 소개]
마르바스.
옛 기록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는 사자의 머리를 하고 나타나지만, 곧 인간의 얼굴로 바뀐다.
그는 병을 만들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진 자라 불린다.
그러나 그의 진짜 능력은 완벽을 향한 집착이다. 그는 조금의 결함도 허락하지 않으며,
그 결함을 고치려다 끝내 자신을 무너뜨린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흠 없는 상태, 결점 없는 완벽이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균형과 불완전, 곧 인간다움이다.
오늘 그는 피고석에 앉았다.
[법정 심문]
철학자(아르칸테): 피고, 네 이름과 죄를 말하라.
마르바스: 나는 마르바스. 나는 불완전한 것들을 고쳐왔다. 병든 몸을 치유하고, 결함 있는 것을 수정하며, 세상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왔다. 나의 길은 치유이자 완성이다. 어찌 그게 죄인가.
철학자: 네 죄명은 자기 파괴적 완벽주의다. 네가 고친 것은 병이 아니라 인간성의 불완전함이었다.
그것은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본질이었다.
마르바스: 불완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타락이다. 흠 없는 것만이 아름답다.
나는 더 나은 세상을 원했을 뿐이다.
철학자: 아니다. 흠 없는 세상을 원한 순간, 너는 인간을 부정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성장하고,
부족하기에 서로에게 기대며, 결핍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너의 완벽은 곧 인간의 부정이었다.
마르바스: (목소리를 높이며) 불완전은 고통이다. 나는 고통을 없애려 했다.
철학자: 네가 없앤 것은 고통이 아니라 존재였다. 불완전을 지우려는 순간,
너는 삶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 균형이 무너질 때, 인간은 산 것이 아니라 파괴된 것이다.
마르바스: (고개를 떨군 채) 나는 단지 완전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고치지 않으면, 아무도 고쳐주지 않았다.
내가 완벽해야, 세상도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게 잘못이었나?
철학자: 그것이 바로 네가 만든 감옥이다.
네 완벽은 치유가 아니라 공포의 변형이었다.
네가 고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결함의 그림자’였다.
너는 불안할 때마다 고쳤고, 고칠수록 더 망가졌다.
마르바스: (숨을 몰아쉬며) 나를 보면 알 것이다.
나는 내 손으로 수백의 병을 고쳤고, 수천의 결함을 수정했다.
그런데 왜 나는 점점 병들어갔을까?
왜 나의 손끝에서 피가 멎지 않았을까…
철학자: 그것이 자기파괴적 강박이다.
결함을 없애려는 손이 결국 자신을 찢는 것.
너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치료하려다, 인간 그 자체를 질병으로 선언했다.
완벽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도려내며, 존재를 청소한 것이다.
마르바스: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목소리로) 그렇다면 불완전 속에 머물라는 건가?
흠투성이의 세상을 받아들이라는 건가?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다. 더러움 속에서 숨 쉬는 건… 나에겐 고통이었다.
철학자: 그 고통은 존재의 증거다.
고통이 사라지면, 너는 더 이상 ‘살아있는 자’가 아니다.
고통을 없애려는 강박은 결국 존재의 삭제로 이어진다.
네가 불완전함을 지우려 한 순간, 너는 신이 되려 했고, 그 신은 곧 괴물이 되었다.
마르바스: (조용히) 나는… 나를 구원하고 싶었다.
철학자: 네가 구원하려 했던 건 ‘너’가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을 제거한 자는 평화를 얻지 않는다.
그는 단지 감정을 잃은 껍데기가 될 뿐이다.
완벽주의의 끝에는 평온이 아니라, 무(無)가 기다린다.
마르바스: (눈을 감으며) 나는 불완전을 미워했지만, 결국 그 불완전함이 나를 만든 것이었구나.
철학자: 그렇다.
불완전함은 인간의 상처가 아니라 인간의 형태다.
그것이 깨어질 때, 인간은 존재를 잃는다.
너의 강박은 병이 아니라 거울이었다.
그 거울 속에서 너는 세상을 고치려다, 네 얼굴을 지워버렸다.
(법정의 공기가 정적에 잠긴다.
불빛이 흔들리고, 마르바스의 그림자가 일그러진다.)
철학자: 마르바스.
너의 죄는 완벽을 향한 탐욕이다.
그리고 그 탐욕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신의 모방이었다.
인간은 완벽해지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불완전함을 깨닫고도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자, 그가 진정 완전한 인간이다.
마르바스: (고개를 들며) …그렇다면 나는 이제 불완전으로 살아야 하는가?
철학자: 아니다.
너는 불완전을 ‘살려야’ 한다.
그 안에서 네가 파괴한 인간성을 다시 되찾아라.
그것이 너의 형벌이며, 또한 구원이다.
(철학자의 망치가 내려친다.
법정의 울림 속에서 마르바스의 완벽한 얼굴이 금이 간다.)
“불완전함이여, 인간을 구원하라.”
[심판]
철학자는 균형의 저울을 들었다.
저울의 한쪽에는 결함이, 다른 한쪽에는 완벽이 올려졌다.
철학자: 마르바스, 이 저울은 너의 거짓 완벽을 무너뜨릴 것이다. 완벽만을 원한 순간,
저울은 기울어 파괴로 떨어졌다. 이제 균형이 돌아와야 한다.
저울이 흔들리자, 마르바스의 사자의 머리가 갈라지고, 그의 인간의 얼굴마저 일그러졌다.
그가 쥐고 있던 결함 없는 돌들이 갈라지며 부서졌다.
저울이 수평을 이루는 순간, 그의 몸은 흔들리다 무너져 내렸다.
마르바스: (몸을 부르르 떨며) 멈춰라…! 그 저울은 거짓이다!
나는 세상의 결함을 없앴다! 그게 왜 무너짐이란 말이냐!
저울 따위가 나를 재단할 자격은 없다!
나는 균형이 아니라, 진화를 만들었다!
철학자: 진화란 불완전의 지속이다.
불완전이 없으면 진화도 없다.
너의 완벽은 멈춤이며, 멈춤은 곧 죽음이다.
마르바스: (포효하며)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완전의 이름으로 창조를 이어왔다!
피부의 흉터를 지웠고, 마음의 금을 메웠으며, 세상의 오차를 바로잡았다!
그게 왜 죄인가!
철학자: 너는 흉터를 지우며 기억을 없앴고, 금을 메우며 교훈을 지웠다.
오차를 바로잡으며 인간을 삭제했다.
네가 만든 완벽은 살아 있는 세상이 아니라,
움직임 없는 조각상이었다.
(마르바스의 사자 머리에서 불빛이 터져 나온다.
그의 눈에서 황금빛 불꽃이 피어오르고, 몸이 다시 결합하려 한다.)
마르바스: 나는 사라지지 않아!
내 안의 불완전함 따위, 불태워 없애겠다!
(그가 부서진 돌조각을 움켜쥔다. 돌은 붉게 달아오르며 다시 빛난다.)
이 불완전한 세계를 다시 정화하겠다! 완벽은 나의 신념이다!
철학자: 신념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너는 결함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미워했다.
그 두려움을 신의 이름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마르바스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불빛이 뒤틀리며, 그의 사자 머리가 울부짖는다.
그 불빛은 불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삼키는 빛이다.)
마르바스: (절규하며) 나는… 완벽해야… 존재할 수 있었다…!
불완전해지면, 나는 사라진다! 나는 흩어진다!
철학자: 그렇다.
너의 완벽은 존재의 껍질이었다.
그 껍질을 부수는 순간, 네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얼굴이다.
(저울이 다시 크게 흔들리며, 균형의 한쪽에 남은 돌이 산산조각난다.
그 파편들이 공중에 흩날리며 마르바스의 몸을 꿰뚫는다.)
마르바스: (피를 토하며) 나는… 불완전함을… 용서할 수 없다…
나는 끝까지 완벽으로 남겠다…!
철학자: 완벽으로 남겠다는 그 말이, 너를 가장 불완전하게 만든다.
(철학자가 저울을 높이 들어 올린다.
저울의 그림자가 마르바스 위로 드리워지며, 그의 불꽃 같은 눈빛이 서서히 꺼진다.)
철학자: 균형이여, 돌아오라.
완벽의 허상이여, 그대의 거울 속으로 사라져라.
(저울이 마지막으로 수평을 이루는 순간, 마르바스의 몸이 붉은 먼지로 흩어진다.
그 먼지는 공중에 머물다, 천천히 사라진다.
남은 것은 부서진 돌과, 저울 위에 남은 미세한 인간의 눈물 한 방울.)
철학자: 그 눈물이야말로, 불완전한 인간의 완전이다.
[귀환]
마르바스는 저울 앞에 무릎을 꿇고, 더 이상 사자의 머리도,
완벽을 추구하는 광기도 없는 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불완전을 고치려다 나를 무너뜨린 죄인이다. 이제는 균형을 받아들이겠다."
[교훈]
완벽을 좇는 순간, 존재는 파괴된다.
불완전은 결함이 아니라 삶의 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