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은 가장 하늘에 맞닿아 있는 곳이다. 가장 탁 트인 곳이고 공기도 가장 좋은 곳(일 것)이다. 가끔 '눈 정화'를 하고 싶을 때 비교적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다. 복잡한 도시의 사람들, 자동차의 매연들과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고 바쁘고 별다를 게 없는 일상 속에서 그나마 휴식 같은 곳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일상에서 경험하는 '옥상'은 하나도 나쁜 것이 없다. 특히나 회사원이라면, 옥상이 없는 회사생활이 얼마나 각박할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하지만 옥상이 자리한 위치적인 이유 때문인지, 옥상은 이 많은 이점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우울하고 절망적인, 혹은 외로운 곳을 상징하고는 한다. 어째서 옥상은 옥상을 '다녀온 후'의 감상 보다도 옥상을 가기까지 우리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의 기호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혹시 '옥상'이라는 어감이 주는 잿빛의 절망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정세랑의 소설 <옥상에서 만나요>의 제목을 들었을 때, 뭔가 산뜻할 듯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옥상이 상징하는 이미지가 그런 것들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지는 쨍한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다. <옥상에서 만나요>의 소설이 절대 표현하지 않은 것 같은 색이, 도리어 표지에 표현되어 있다. 이런 청초하고 희망적인 심상은 소설의 정말 끝 부분에 이르러서야 나오기는 한다. 그래서 이 소설 표지의 해답은 정말이지 소설을 끝까지 다 봐야 알 수 있다.
<옥상에서 만나요>는 바로 위와 같은 심상이 도입부에 압축적으로 깔린 채 시작한다. 옥상은, 아무런 희망도 없고 탄식과 절망뿐인 회사를 다니는 주인공이 때때로 올라와 회사의 지리멸렬함을 씹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결혼'에 대한 진지한 결정을 하게 되고, 어쩌다 보니 바로 그 결혼이라는 것을 진행하기에 이른다(물론 절대 평범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단숨에 소설은 회사 옥상이 아닌 자취방, 이사한 집, 지방의 한적한 마을로 장소로 이동한다. 그런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 그로테스크한 회사의 옥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회사의 옥상에서 비롯된 이야기의 단서들은 소설 내내의 분위기를 이끈다. 주인공이 옥상을 벗어났음에도 여전하다. 그런데 이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안에서도, 장면 전환은 굉장히 빠른 템포로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옥상에 올라오기까지 주인공이 겪은 '스트레스들'은 소설의 도입부에서 영화의 인서트 컷처럼 이어지고,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이 남편을 찾기까지의 전개 부분은 판타지 영화처럼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이 독자가 천천히 의심을 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되어 버리고 금세 절정으로 올라가게 된다. 어느새 절정이 되어버린 소설은 상상의 날개가 최대치로 펼쳐지면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옥상에서 만나요>는 단편 소설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웹툰을 본 것처럼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다음 장면으로 전환되는 순간의 속도와 충격 역시도 웹툰을 연상케 한다. 순식간에 읽어버렸지만 무언가 영화를 본 느낌이다. <물의 형태>가 느껴지기도 한, 기괴하면서도 사랑이 느껴지는 독특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