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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an 24. 2017

7년

다큐멘터리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종종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마음이 불편'은 적합한 표현은 아닐지라도 '편치 아니하다'는 기분은 종종 든다. 이런 걸 혹자들은 다큐멘터리가가 극 영화와 다른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기분은 감흥의 크기만 따지고 보았을 때, 그 크기 때문에 '힘'이라는 말을 빌어 쉽게 그 권위를 얻기도 한다. 즉각적인 깨달음을 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 말이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닌 어떤 잔혹한 영화들의 경우, 미안함과 안타까움 마음이 앞서게 되면서 역기능이 먼저 도착하기도 한다. 잔혹한 현실을 보고 난 후 영화관 밖을 빠져나왔을 때, 그 시공간은 영화를 보고 있었던 시공간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7년>을 보았다. 다분히 개인적인 경험과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권이 들어선 이후 다시 그 자유를 되찾기 위한, 여기서 비롯된 언론이라는 공적인 영역의 본래적 역할을 찾기 위한 시간들을 이어 붙여놓은 영화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건 지금도 (부분적으로는) 남아있는 ytn과 mbc의 기록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왜 편치 않은 마음을 주었을까. 그건 '왜 이 일을 하는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 사람들의 답변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직업 정신이나 사회 정의를 위한 문제는 아니다. 그런 큰 명분과는 상관없이 내가 나답게 살고 싶은 것(소리치고 싶은 것), 지금의 내 위치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마음 그 자체이다.


옛날에 이런 사람들과 닿아 있는 일을 하였을 때의 나는 그런 마음까지는 없었다. 이건 내가 그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의식으로 뉴스 일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은 아니다. 생활과 나의 시간을 다 바친것이 슬플 정도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걱정할 정도까지가 아니었던 나는 그만큼의 이유 같은 것이 희미했고 (물론 그런 게 꼭 있어야 할 의무도 없었지만) 게다가는, 어느샌가 그런 투쟁의 누적에 그냥 익숙해졌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욕도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의견과 의견의 대립이 으레 그러하듯, 사건사고 면에 붙은 하나의 현상으로만 눌러서 보게 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던 것 같다. 2014년 초겨울 해직 언론인들의 최종 선고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아 그랬었지' 했다. 지금 이런 시대가 결코 당연한 게 아닌데.


영화관 내 옆에 앉아있던 두 명의 아저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7년>을 보았다. 그들은 왠지 이 일들과 관련된 언론인인 듯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영화관을 빠져나왔을 때, 내 지난 시간들을 조금 늦게 되뇌어 보았을 때 그나마 그 아저씨들과 연대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사건들은 자주 연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건 즉시적으로는 매우 슬프지만 시간이 지났을 땐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들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기가 힘들 때 무언가 힌트를 준다. 내가 또 답을 찾기가 힘들 때 조금이나마 힌트가 되는 사람들과 일들이, 영화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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