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 관찰
오늘 점심에는 김밥을 먹었다. 4천 원이나 하는 비싼 김밥이었다. 4천 원이라는 비싼 가격만큼 정말 김밥은 굵고 길었다. 숯불갈비인지 숯불고기인지 어쨌든 돼지고기 같은 것이 어울리지 않게 속에 들어 있었다. 이 큰 게 내 속에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잠깐 생각했는데 다 들어갔다. 생각보다 사람 내장의 속은 깊고 넓다.
동일 조건을 다른 현상으로 만드는 배경으로서의 지각장
김밥 가게 앞에서 빈자리 나기를 기다리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화장했네요, 어제는 안 했는데." 이 말은 틀렸다. 나는 화장을 해본 적이 살면서 딱 두 번 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은 그 두 번 중 하루가 아니었다. 입술에 무언가를 발랐는데 이걸 화장으로 확대 해석한 것 같았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입술에 무언가를 바른 것도 화장에 속하는 덧칠 행위를 얼굴에 한 것은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도 같은 것을 발랐고 오늘도 같은 것을 발랐다. 어제나 오늘이나 24시간 약간 늙은 차이가 있을 뿐 거의 같은 조건이었다.
현상을 만든 조건은 어제와 오늘이 똑같았지만 오늘의 현상이 화장처럼 보이려는 지평을, 오늘의 나는 제공할 수 있었다. 전날보다 덜 피곤하고 덜 추위를 받은 것도 영향일까. 아니면 나의 기분과 마음이 비췄던 것일까?
예쁘다의 기준
그동안은 예쁘고 아름답다는 판단을 시각적 자극이 오는 바로 그 순간, 보는 그 순간의 짧은 직관으로만 실천했었다. 황금률은 보는 순간의 시각적 충격이 불러일으키는 '직감'으로만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느꼈다. 마음으로 본다는 게 이런 판단의 차이를 불러온 것일까?
오늘은 익숙한 동네 제주도 생각을 했다. 날이 풀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여기보다 따뜻하고 꽃이 잘 보였던 동네가 생각나서 그랬다. 그리운 것들은 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많지만, 싫으면서 좋은 것도 정말 많지만, 이런 양가적인 생각이 아무렇게 여러 겹으로 쌓여 엉망진창이 된 대상은 제주도가 제일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리움이 입 밖에 나오는 것은 제주도뿐이다.
동네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걸어 다닌 거리의 길이만큼 남는다. 보고 또 봤던 풍경들이 가끔 꿈에 나오고 그런다.
오늘 운동을 하고 와서 그런지 저 운동장에서 밤에 20바퀴씩 돌던 생각이 났다. 낮에는 출근을 앞두고 조금 일찍 나와 학교 안 벚꽃길을 걷던 생각도 났다. 낮에도 밤에도 이렇게 편안한 기억을 주던 곳이었다니, 그래도 여기는 내가 정말 좋아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