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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Feb 03. 2017

관찰과 판단

크기 관찰

오늘 점심에는 김밥을 먹었다. 4천 원이나 하는 비싼 김밥이었다. 4천 원이라는 비싼 가격만큼 정말 김밥은 굵고 길었다. 숯불갈비인지 숯불고기인지 어쨌든 돼지고기 같은 것이 어울리지 않게 속에 들어 있었다. 이 큰 게 내 속에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잠깐 생각했는데 다 들어갔다. 생각보다 사람 내장의 속은 깊고 넓다. 


동일 조건을 다른 현상으로 만드는 배경으로서의 지각장

김밥 가게 앞에서 빈자리 나기를 기다리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화장했네요, 어제는 안 했는데." 이 말은 틀렸다. 나는 화장을 해본 적이 살면서 딱 두 번 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은 그 두 번 중 하루가 아니었다. 입술에 무언가를 발랐는데 이걸 화장으로 확대 해석한 것 같았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입술에 무언가를 바른 것도 화장에 속하는 덧칠 행위를 얼굴에 한 것은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도 같은 것을 발랐고 오늘도 같은 것을 발랐다. 어제나 오늘이나 24시간 약간 늙은 차이가 있을 뿐 거의 같은 조건이었다.

현상을 만든 조건은 어제와 오늘이 똑같았지만 오늘의 현상이 화장처럼 보이려는 지평을, 오늘의 나는 제공할 수 있었다. 전날보다 덜 피곤하고 덜 추위를 받은 것도 영향일까. 아니면 나의 기분과 마음이 비췄던 것일까?


예쁘다의 기준

그동안은 예쁘고 아름답다는 판단을 시각적 자극이 오는 바로 그 순간, 보는 그 순간의 짧은 직관으로만 실천했었다. 황금률은 보는 순간의 시각적 충격이 불러일으키는 '직감'으로만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느꼈다. 마음으로 본다는 게 이런 판단의 차이를 불러온 것일까?





오늘은 익숙한 동네 제주도 생각을 했다. 날이 풀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여기보다 따뜻하고 꽃이 잘 보였던 동네가 생각나서 그랬다. 그리운 것들은 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많지만, 싫으면서 좋은 것도 정말 많지만, 이런 양가적인 생각이 아무렇게 여러 겹으로 쌓여 엉망진창이 된 대상은 제주도가 제일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리움이 입 밖에 나오는 것은 제주도뿐이다.


동네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걸어 다닌 거리의 길이만큼 남는다. 보고 또 봤던 풍경들이 가끔 꿈에 나오고 그런다. 


오늘 운동을 하고 와서 그런지 저 운동장에서 밤에 20바퀴씩 돌던 생각이 났다. 낮에는 출근을 앞두고 조금 일찍 나와 학교 안 벚꽃길을 걷던 생각도 났다. 낮에도 밤에도 이렇게 편안한 기억을 주던 곳이었다니, 그래도 여기는 내가 정말 좋아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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