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깎이

by 해달

나는 손톱이 작다. 칠삭둥이 팔삭둥이도 아닌(걸로 알고 있는)데 손톱은 마치 그런 것 마냥 짧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TV에서 보는 탤런트들 마냥 '어른 여자 손'의 모습으로 손가락도, 손톱도 길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커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여전히 내 손은 어린이들의 손처럼 손가락도 짧고 손톱도 짧다. 몇 년 전만 해도 손가락이 매우 통통해서 정말 어린이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언제부턴가 조금씩 젖살이 빠지면서 손가락 살도 좀 빠졌다. (여전히 통통하긴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약간 어른스러운 손이 되었다. 손등 하고 손목, 발목이 뼈가 드러나는 부위라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여성스러운 손이 그러지 않은 손보다는 조금 더 예쁘다는 장점 말고는, 딱히 그런 손이 부럽지는 않다. 나의 손톱이 짧은 것도, 손가락이 통통한 것도, 손이 흰 것도 좋다. 어른이라고 하기엔 좀 어설픈 나 다운 손이라고 생각한다.


손톱을 깎을 땐 아빠 생각이 난다.

손톱을 깎을 때마다 단 한 번도 아빠 생각을 안 한 적은 없던 것 같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아빠가 깎아준 추억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주말마다 집에 왔던 아빠는 신문지 위에 나를 앉혀놓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줬다. 아빠는 이걸 '쓰메끼리(爪切り)'라고 불렀고, 집에 아빠가 없던 평일 동안 아빠를 기다리면서 쑥쑥 자란 것들을 하나하나 깎아주었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몇 학년이고 몇 살인지는 잘 몰랐지만 이번 주말엔 손톱이 많이 자라서 자를 때가 되었다는 사실은 까먹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었다.


밤에 손톱을 자르고 함부로 아무 데나 버리면, 쥐가 주워 먹고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변신해서 내 행세를 하고 다닌다고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에서 본 적이 있다. 아빠도 그 민담을 아는지 다행히도 언제나 낮에 손톱을 깎아 주었다. 은비와 까비가 알려준 이 공포와도 같은 풍속에서 벗어난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정말로 쥐가 먹을까 봐. 그래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손톱은 언제나 낮에 깎았다.

내손톱.png


두 번째 이유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손톱깎이가 아빠가 다닌 회사에서 나온 기념품이라서 그렇다. 아빠가 다닌 회사는 한때 정말로 기념품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만들던 회사였는데, '아니 뭐 이런 걸 다 만드나'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손톱깎이였다.


작년인가 엄마 아빠 집에서 손톱을 깎는데, 아빠가 "이제는 혼자 잘 깎니"라고 나에게 물어봤다. 내 나이가 몇인데 설마 손톱을 혼자 못 깎을까 진짜로 걱정하나 싶다가도 아빠가 다 늙은 딸에게 그냥 농담을 한 건가 싶었다.

생각해보니 그건 아빠가 진심으로 물어본 말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아빠를 주말에도 매주 볼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간 어른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점프된 것처럼 어른이 된 나는 손톱을 직접 깎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유년의 긴 시간 동안 자란 손톱을 아빠는 거의 보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나는 나의 시간과 기억을 스스로 자르고 스스로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앉혀놓고 머리를 잘라준다거나, 머리를 땋아준다거나, 귀를 파준다거나, 손톱을 깎아주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럴 땐 여덟아홉 살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의 손길이 내 몸이 닿을 때 그 '닿음의 순간'이 따뜻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을 때의 충격을 여전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빠의 큰 손이 손톱을 잘라주고 엄마의 큰 손이 앞머리를 잘라주던 시간들은 내가 아빠와 엄마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육체로 느낄 수 있었던, 그 증명이 가능했던 얼마 안 되는 순간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가 나에게 준 수많은 기억과 기념품들이 내 생활 여러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유달리 손톱깎이는 그 빛나고 날카로운 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부드럽게 나의 기억과 시간들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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