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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Apr 09. 2017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슬픈 영화란 뭘까 생각해본다. 어떤 이야기들이 그렇게 슬프게 다가올까. 이별, 죽음, 희망의 상실...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이런 이야기들 영화에서 많이 보기는 한다. 그래서 익숙하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도 그런 내용들이 나온다.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와 이별을 하고, 주인공은 희망은커녕 제대로 살아갈 수 없어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간다. 아무튼 살긴 살아야 하니까.



이런 걸 굳이 보여주는데, 그저 살아가는 주인공 앞에 사건들은 예고도 없이 불행의 모습으로 일어나고 이런 사건들은 연이어 또 다른 삶의 고비들을 만들어 낸다. 


죽음을 맞이하고 그 이후 산 자의 살아가는 시간들을 보여주는 것 뿐인데도 그렇다. 이미 사건은 다 벌어진 것 같은데도 영화의 시간들이 내내 힘겹다. 이별과 죽음이라는 상실의 순간은 그 이후에 더 힘든 견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죽음이든 고통이든 아픔이든 어떤 사건이 일어났든 간에 상관없이, 아무튼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제정신으로 기억하고 수습하며 살아가야 하는 삶이 너무 길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고비가 연속될수록 이 사람들의 인생은 어떻게 해야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저 지켜보는 나는 이 무지막지한 광경 앞에서 어떻게 해야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갑자기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었을 때 어떻게 견뎌야 하나?


남의 일, 허구의 사건, 셀룰로이드에 새겨진 물질적인 순간을 영화로 보는 것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다 보고 무언가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건강검진 신청을 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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