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Jul 20. 2016

최인호 <가족>

중고등학교 다닐 땐 소설을 쓰고 싶었다. 대학에 와서는 문학 평론을 쓰고 싶었고, 영화 평론도 쓰고 싶었다. 이런 장래희망을 이루기 위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비슷한 코스로 학교에서 조금씩 글을 배웠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내 용기가 딱 그만큼, '조금씩' 일 뿐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무언가 끝까지 써보지도 못하고 난 안 되겠다, 하고 그만두었다.


어렸을 때는 이런 꿈이 현재형이었고, 지레 겁부터 먹었던 오랜 시간 동안에는 안 그런 척 기억에서 묻어버린 과거형이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는 다시 생각나는 현재형의 꿈이다. 내 장래희망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공간이 새로 생겼는데 여기에 뭘 써야 하지, 엄마 아빠를 보러 가는 길에 문득 문방구에서 새로 산 일기장이 건넬법한 고민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요즈음 나의 생활 속에서 발굴될 만한, 이야기가 될법한 경험들을 더듬어 보다가 불현듯 시간의 역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중고등학교 때가 보였다. 나도 글 쓰고 싶어, 이런 글을 쓰고 싶어 라고 마음먹은 시절이다.


이 때는 내 가치관과 행복의 그림이 부모님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만큼 엄마 아빠의 영향 아래에 놓인 책을 집안 책장에서 꺼내 읽었던 때인데, 바로 그 책 생각이 났다.


최인호의 <가족>은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를 나와 살게 되었을 때 들고 온 책이다. 아마도 아빠가 80년대에 산 책일 것이다. 가족이 그리운 마음에 그랬는지, 표지가 특이해서 그랬는지, 문체가 좋아서 그랬는지 아무튼 춘천 집을 나오면서 덩달아 가지고 나왔고 고등학교 때부터 내 수중에 있던 책이다. 지금은 무슨 일인지 언니 집에 와있다.


고 2 때인가 국어 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 매주 있었다. 돌아가면서 소개를 하는 자리였다. 나는 당연히 이 책을 소개했었다. 안타깝게도 어떤 말로 이 책을 소개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일상생활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에 대한 경탄을 먼저 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이 어쩌구, 일상에서 글감을 찾는 작가의 심미안이 어쩌구..했을 것이다. 가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는 책.. 같은 말도 했을 것이다. 나 조차도 가족에 대해서는 '항상 비슷한 패턴의' 사랑과 그리움과 미움 등등의 생각을 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한 장면 속에서 나는 '가족'이 품은 많은 의미들을 장래희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생활에서 겪는 가족들과의 행복한 경험, 가족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행복한 시간, 그리고 글자로 엮어지면서 다시 한번 행복을 엮은 이 책 그 자체. 정말로 나의 장래희망이었나. 현실의 가족 속에 처한 나의 상황과는 별개로 그런 이상적인 꿈을 꾸었던 것이다.

 

가족이 읽은 책을 물려받아 나도 읽고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된 유산과 같은 책, 그 작가는 현실 세계에서 가족을 이루었다는 사실, 책 안에는 가족의 모습이 있다는 행복한 그림, 이 모든 게 이루고 싶은 꿈이었던 것 같다.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가족은 여기에 있고, 가족에 대한 나의 생각은 '항상 비슷한 패턴'대로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생각하는 건 언제나 미안함과 외로움과 그리움을 동반한다. 이와 동시에 장래희망 같은 것이 나에게는 여전히 가족이다.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많이 좋아하는 것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이런 생각은 여전하다.



작가의 이전글 옥희의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