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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n 01. 2017

'관계'의 세계관에 주목해서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이미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은 독자라면, 나폴리 시리즈의 두 번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까지 읽게 되었을 때엔 막연하게나마 이 소설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조금씩 그리고 있을 것 같다. 이건 얼굴이나 모습에 대한 상이기도 하겠지만, 작가의 서술 방식과 심리 묘사의 탁월함으로 인해 기대하는 작가의 성격 혹은 성향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할 것이다. 대단한 관찰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관계 관찰자’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소설을 보는 내내 이 작가의 눈빛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나폴리 시리즈의 전체 이야기 속의 '부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캐릭터들의 행동 스펙트럼으로 보았을 때엔, 그야말로 ‘답다’고 생각될 정도로 과감하고 파격적인 인물들의 큼직큼직한 사건들이 내내 이어진다. 1권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예상한 수준을 가히 능가한다. 그런데 나폴리 시리즈가 보통의 연작소설과는 다르게 보여주는 장엄함의 성격은, 전개가 거듭될수록 서로를 의식하고 간파하는 관계의 세계관 또한 점진적으로 커진다는 점에 있다.



1권 <나의 눈부신 친구>가 연작의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데 공을 들였다면,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이런 기획 의도의 형상화에 더 가까워진다. 즉 레누와 릴라를 비롯한 많은 등장인물들의 청년기를 다룬다. 그리고 이것은 혈기 왕성한 시절의 클라이맥스의 집약이기도 하다. 추상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술과 같기는 하겠지만, 면면의 에피소드의 성격을 이야기하자면 이 소설의 정서는 사실상 질투와 치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질투와 치정이라는 정서는 애정에 대한 쟁취와 승기를 잡지 못한 어느 한쪽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치정이 낳은 산물로서 '신파'의 서사도 추가된다(정말 질질 짜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몇가지 주요 사건들은 뭇 신파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치정과 신파는 자칫하면 너무 통속적이게 된다. 이건 장편 소설을 쉽고 지루하지 않게 쓰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엘레나 페렌테는 이런 방법을 굳이 쉽게 쓰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 눈이 가고 좇을 수 밖에 없는 인물들 내면의 사건과 동요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가 가히 어마어마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금방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히려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출간할 3권은, 2권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까지 진행된 인물들의 폭발적인 사건과 치정의 단순한 연장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인물들의 세계는 사건과 시대가 가로 짓는 운명을 넘어서 언제 어떻게 비틀어질지 모르는 사람들의 관계에 많이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작가가 유달리도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킴과 동시에 이 많은 인물들을 하나 빠짐없이 다각, 다층 관계로 설계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나폴리 시리즈의 분량은 가히 러시아 소설의 그것을 능가하지만, 디테일 역시 러시아 소설의 그것을 넘어선다. 소설의 배경과 등장인물에 대한 틈 없는 묘사가 약간은 과할 정도로 편집증적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한번 읽기 시작한다면 다음 편이 기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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