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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l 18. 2017

흑석동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지만, 어린 기억이 잠들어 있는 곳은 쉬이 가지 못한다.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 그렇게 묻어둔 동네는 흑석동이다. 생각해보니 한 4년 전에 가보고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퇴근하고 갈 수 있고,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도 버스 한 번만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다.

한때는 그 동네로 이사를 갈까 하고 고민도 잠깐 했었다. 흑석동에서 살면 편안함으로 오인되는 익숙함을 느낄 수 있고, 여차하면 입학 시험을 볼 수도 있으니까.


흑석동은 혼자 가야 하는 곳이지만 왠지 혼자 가기가 외롭다. 어떤 동네에 혼자 가는 걸 주저하고, 그냥 생각만 했는데도 외로운 기분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때 그곳에서 동무가 되고 벗이 되어준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사라진 사람도 있고, 이별한 사람도 있고, 더 중요한 각자의 인생을 살러 간 사람도 있고, 내가 그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오기도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은 나를 허옇게 잊었을 것이다. 사람들도, 마을도, 시간도, 많은 게 허옇게 되었으니 우리는 서로를 찾을 수도 알아볼 수도 없다. 나는 그때의 많은 소망과 장래희망 같은 것들을 탈색시키고 전혀 엉뚱하지만 최적으로 적응하여 잘 지내고 있다. 내가 이렇게 지내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데 10여 년 전의 그곳을 생각하면 나는 내가 생경해진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 지금으로부터 5천 년도 더 된 태고의 생각들을 배우는 사람들... 여전히 계속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난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 올곧음 만큼은 왠지 부러워진다. 오늘 우연히 어떤 선배-학형 이야기를 듣고는 옛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흑석동 생각까지 했다. 동네는 상전벽해라고 할 만치로 많이 변해 있겠지만 그래도 제일 변한 건 나일 것이다. 나의 기억과 나의 곁의 모든 것들로부터 간격이 생겼다. 멀어진 이 곳에서 그곳을 생각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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