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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뜻지 Aug 02. 2021

거리두기, 그리고 관계 맺음

코로나 시대의 학교에서 사라진 풍경에 대하여

싸우고, 화해하고, 관계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배우러
우리는 학교에 온다.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님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늘 강조하던 이야기다. 곱셈구구, 기행문 쓰는 법, 스스로 숙제하기, 자리 정리하기도 물론 다 중요하지만, 나는 '건강한 관계 맺음을 배우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다.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모여있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함께 자란다. 자신과는 다른 특색을 지닌 친구에게 물들어 가기도 하고, 도무지 성향이 맞지 않는 친구와 격렬히 논쟁하고 다투기도 한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다양한 친구들과 소통하고, 공동체를 이루고, 때론 갈등을 겪고, 그러한 문제 상황을 유의미하게 겪어내며 한 단계 성장하는 것. 관계의 축제가 벌어지는 교실. 이 부분만큼은 공교육이 사교육에게 넘겨서는 안 되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의 상황은 이 믿음을 포기하거나 지연시켜야만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학교는 관계 맺음 앞에 거리두기가 우선함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짝과 모둠이 사라진 교실 안 나비효과     



 방역에 관련된 여러 가지 지침이 내려왔다. 아이들 책상을 시험 대형으로 1줄씩 맞췄다. 짝은 없다. 당연히 모둠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책상 배치가 학급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당연히 짝 활동과 모둠활동이 사라졌다. 수업 장면은 단조로워졌다. 주로 내가 말했고, 아이들은 들었다. 내가 말을 멈추면,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했다. 협력수업이 제한된 상황에서 영상 시청과 단순 놀이 외에 쓸 수 있는 카드가 적다 보니 강의식 수업이 주를 이뤘다. 놀이나 게임을 간간이 넣어봐도 역시 같이 놀아야 재밌다는 사실만 재차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아이들끼리 협력해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활동이 줄어드니, 수업의 역동성 또한 현저히 떨어졌다. 짝 활동이나 모둠활동을 진행하면 으레 생기기 마련인 의견 충돌과 소소한 싸움 또한 사라졌다. 친구들과 잦은 충돌을 일으켰던 아이들이 교실에서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협력을 배울 기회를 수업에서 없애니 가시적인 싸움이 사라졌다. 싸움이 사라지니 상담도, 작은 회의도 열 일이 없어졌다.


갈등도 없고, 협력도 없다.     

 


 자리 선정이 아이들에게 지니는 의미도 달라졌다. 코로나 이전에는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의 짝과 모둠을 재조직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달에 앉게 될 자리를 굉장히 기대했다. 무작위로 뽑기, 자리 경매 놀이, 똑같은 동시를 선택한 친구와 짝꿍 되기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됐다. 지난달에 앉았던 짝꿍이나 모둠 친구들과는 서로 중복되지 않게 앉는 자리 상피제나, 협력을 잘한 모둠에게 주는 뽑기 보상 등 자리 뽑기에 추가되는 규칙 또한 학급 구성원의 취향에 따라 다양했다.

 자리 선정은 이후 한 달의 학교생활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자리를 바꾸는 날은 기대와 긴장이 공존했다. 저 친구만큼은 짝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걱정의 마음. 꼭 한 번 같은 모둠을 해 보고 싶은 호감의 마음. 아이들은 좋고 싫음을 쉽사리 숨기지 못했다. 아이들의 표정과 저도 모르게 내뱉는 말은 복잡 미묘한 교우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단서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일주일에 끽해야 한 두 번 등교해서 앉는 자리였다. 아이들은 같은 반이지만 서로를 잘 몰랐다. 유독 발표를 많이 하는 친구나, 학급 임원으로 뽑힌 친구의 이름 정도는 기억했다. 그 외에는 본인 자리에서 앞, 뒤, 옆에 있는 친구 정도만 이름을 알았다. 친구와의 교집합을 파악하기에는 서로를 겪은 횟수도, 시간도 부족했다. 긴급 돌봄을 신청해서 매일 학교에 오는 아이 입장에서는 1주일에 한 번 보는 명목상 같은 학급 친구보다는, 긴급 돌봄 교실에서 매일 보는 다른 반 친구가 정서적으로 더욱 가까웠다.

 수업 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그저 꼼짝없이 앉아만 있어야 하는 자리. 나는 이런 코로나 교실에서 자리 선정은 무의미하다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겨우 1주일에 한 번 등교해서 앉는 자리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한 번을 어디에 앉느냐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유로운 움직임과 이동이 극단적으로 제약된 상황에서 자신의 앞, 뒤, 옆에 어떤 친구가 앉는지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 적어도 앞, 뒤, 옆에 앉은 친구와는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확률이 있었다. 선생님이 친구와 거리를 두라며 둘 사이를 가로막기 전까지는.


 친구가 어려워하는 문제를 도와주기 위해 뒤돌아 앉아 말을 건네는 다정한 아이, 친구가 떨어트린 지우개를 주워주는 세심한 아이,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친구에게 자신의 색연필을 선뜻 빌려주는 따뜻한 아이, 바빠 보이는 선생님을 대신해 친구들에게 학습지를 대신 나눠주고 싶은 고마운 아이. 거리두기 지침과 공용물품을 포함한 타인의 물품 사용 자제를 권하는 방역 수칙에 역행하는 행동이다. 관계를 중시하면 방역이 경시되고, 방역을 중시하면 관계가 경시된다. 아이의 다정한 마음과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지시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 정말 곤욕스러웠다.


 코로나. 방역수칙. 거리두기.  

 

 이 단어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마치 척력과 같은 작용을 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말도 참 잘 듣는다. 그게 더 속상하고 미안하다. 지키지 않을 수도 없고, 완벽히 지킬 수도 없는 지침 아래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중이다.


 긴 터널의 어디쯤에 있는 걸까. 이 작고 소중한 교실이 관계를 배우는 공간이 되길 언제나 소망한다. 그리고 모든 공간이 그 본연의 역할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표지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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