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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뜻지 Aug 07. 2021

쉬는 시간의 풍경

소모임 전성시대 그리고 빼앗긴 쉬는 시간


B.C  놀이를 만드는 아이들, 소모임 전성시대


 아이들은 주어진 놀이 방법을 고수하기보다는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참 좋아한다. 보드게임 상자에 적힌 놀이의 방법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다양한 놀이의 변주가 생겨난다. 친구들과 기존 방법으로 놀면서 규칙을 추가시키거나, 보드게임 제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기상천외한 놀이 방법을 개발한다.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의 소소한 행복이다. 나는 ‘카프라’라는 놀잇감을 좋아한다. 젠가보다는 두께가 얇고, 길이는 살짝 긴 나무막대에 불과한 카프라를 이용해서 아이들은 정말 다양한 놀이를 많이도 만들어낸다. 도미노 놀이를 하거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우주선을 만들거나, 카프라로 탑을 쌓기도 한다. 학급운영비의 여유가 있으면 나는 카프라 조각을 추가로 더 구매해두곤 했다. 아이들과, 아이들의 새로운 놀이를 지켜보며 소소한 행복을 느낄 나 자신을 위해서.

카프라 탑 완성 기념사진

 

 아이들 놀이 구경 중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여학생들의 ‘클럽 모집 놀이’였다. 그 놀이의 시작은 머리를 마구잡이로 풀어헤치고 윤지가 등교를 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윤지의 부모님께서 아침에 너무 바쁘셔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내가 묶어줘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1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같은 모둠에 앉은 연서가 윤지의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주었다. 연서의 머리 땋기 실력은 제법이었다. 이미 예쁘장하게 머리를 묶고 온 다른 아이도 별안간 자기 머리를 풀어헤치며 윤지처럼 머리를 땋아달라고 했다. 그것이 ‘머리 땋기 클럽’의 시작이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내 머리의 스타일링을 종종 맡겼다. 쉬는 시간에 ‘머리 땋기 클럽’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유사 클럽 모집 공고가 이어졌다.  그야말로 소모임 전성시대!


놀잇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 서로의 머리를 땋아주는 풍경, 딱지와 브롤스타즈를 바꾸는 모습, 누군가의 자리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며 노는 그 모습. 코로나 전의 쉬는 시간, 그 왁자지껄한 풍경을 추억해본다.





A.C  빼앗긴 쉬는 시간


 초등학교는 대개 1교시 40분 수업 후, 10분 쉰다. 코로나 이후에는 쉬는 시간을 횟수나 그 시간 면에서 대폭 줄였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 1, 2교시 수업 후에 10분 쉬고 3, 4교시 수업하고 10분 쉬고 5, 6교시(중학년이라면 5교시)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급식을 먹고 하교를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있는 시간 자체를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초등학생의 집중 시간을 고려해봤을 때 가히 살인적인 일정이다. 학급별로 쉬는 시간도 다르게 조정하고 반별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지정해서 사용했다. 여러 학급 학생들이 화장실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고, 확진자 발생 시 동선이 겹치는 경우의 수를 줄이기 위한 조치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명목상의 화장실 시간표였을 뿐 정해진 대로 지키는 것은 당연히 힘들었다.


 마치 화장실 시간표처럼 쉬는 시간은 형식적으로 존재했다. 코로나의 쉬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허용된 것은 자기 자리에 꼼짝 말고 앉아서 혼자 놀기, 화장실 다녀오기, 너무 답답한 경우에만 사람 없는 복도로 가서 잠시 마스크 내리고 숨 쉬고 교실로 돌아오기 뿐이다. 다른 친구 자리에 가서 말을 걸거나, 교실 한편에 모여서 옹기종기 놀면 안 된다. 나는 아이들의 당연한 ‘휴식권’과 ‘놀이권’을 ‘거리두기’ 한 마디로 제압했다. 아이들의 우정을 위협하는 이 교실 최강의 빌런이 된 기분은 무척 씁쓸했다.


 학급 문고와 보드게임이 쌓여있는 교실 책장은 공용물품 사용금지 테이프로 가로막혔다.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먼지만 쌓여가는 놀잇감은 계륵이란 단어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온전히 쉬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감시하는 것이 싫었다.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내가 교실 밖으로 잠깐 나갔다가 들어오는 사이에 자연스레 삼삼오오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거리 두고 떨어지라’고 지시하는 일이었다. 내가 없으면 아이들이 눈치 안 보고 그나마 편하게 모일 수 있으니까 차라리 내가 교실에 좀 늦게 들어가야 하나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쉬는 시간 파괴자는 코로나인데 괜히 내가 악당이 된 억울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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