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고 365일 동안 매일 썼다. 글을 잘 쓰는 게 목표가 아니라 매일 쓰는 게 목표였다. 말하는 인간이 글 쓰는 인간이 되기 위해 스스로 만든 통과의례를 치렀다.
이를 통해 글쓰기 근육이 단단해졌다(엉덩이 근육도!). 글쓰기 근육이 단단해지니 업무적인 글도 술술 써질 정도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감이 사라졌다. 내 안의 누군가가 대신 글을 쓰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글을 잘(often) 쓴다고 잘(well) 쓴다는 말은 아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듯이 말이다. 말하기 강사와 글쓰기 강사는 거짓말을 하기 힘들다.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능력이 드러나기에 못하면서 잘한다고 말할 수 없다. 강제적으로 진실만을 말할 수밖에 없다. 참~ 진실된 직업이다.
365일 글쓰기 이후부터는 조금씩 질을 고려하며 쓰고 있다. 쓰는 것 자체가 목표였던 때와는 다르다. 조금 더 나은 글을 써야만 하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묘한 부담감이 생겼다. 심지어 일주일에 딱 세 번, 월화수만 쓰고 있으니 더욱 퀄리티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는 날에도 다른 곳에서 매일매일 쓰고 있다. 내년 1월에 출간되는 책을 꾸준히 쓰고 있고, 스레드에서는 하루에도 10개가량의 짧은 글을 쓴다. 하지만 브런치에서만 나의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전보다 적게 다가가는 만큼 좀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일려나? 아무튼 전에는 없던 부담감이 한 스푼 정도 생겼다. 아니 잘 쓰고 싶은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리 늦어도 오후 3-4시 이전에 올라올 글이 이렇게 늦은 밤에 올라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오늘도 무슨 주제로 쓸까 고민을 하다가 글을 써야 할 때 쓰지를 못했다. 퇴근을 하고 나서야 이렇게 벼락치기를 하고 있다. 느끼겠지만 오늘은 주제가 없다. 그저 쓸 뿐이다. 쓰다 보면 내용과 주제가 나오리라 믿으며 꾸역꾸역 써나가고 있다(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안 나온 것 같다).
다양한 모임에서 글쓰기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늘 하는 말이 있다. "매일 쓰기 위해서는 기준점을 낮추어야 해요." 너무 좋은 글을 쓰려다 보면 지레 포기하게 된다. 일단 써야 한다. 그냥 써야 한다. 오늘의 내 글은 이렇게 뱉은 말을 지키는 약속일지도 모른다.
혹시나 글쓰기가 두렵거나, 쓸 말이 없다면 오늘 내 글을 기억하길 바란다. 이렇게 그냥 써도 된다. 그러다 보면 글이 된다. 중요한 건 쓴다는 것 그 자체다. 퀄리티는 일단 쓰고 나서 생각해 보자.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써야 한다. 그냥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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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Clay LeC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