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두 권의 책을 독립출판으로 냈지만, 출판사와의 작업은 처음이다. 많은 것이 새롭고 마음가짐 또한 남다르다. MSG를 한 스푼 넣어서 말해보자면 독립출판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이제야 진짜 작가가 된 듯한 기분도 든다. 나의 글쓰기에, 더 직접적으로는 책의 판매량에 영향을 받는 분들이 많아졌다. 더 이상 '열심히 썼다'라는 말로 퉁칠 수 없는 프로 작가가 된 것이다. 잘 써야 한다. 독자의 만족도가 높은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부담감은 최대한 내려놓으려 했다. 독립출판할 때처럼 즐겁게 쓰려고 노력했다. 힘이 들어갈수록 글도 무거워진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료업계에는 VIP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있다. 지인이나 혹은 유명인사를 수술할 때 평소보다 더 잘하려다가 오히려 망치게 되는 바를 일컫는 말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그냥 썼다.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썼다. 퇴고의 과정에서 완성도를 높이면 된다는 생각으로. 미래의 나를 믿고 썼다.
초고를 완성하고 나서는 타깃 독자 8명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았다. 그때 분명해졌다. 내가 길을 잃었는지 제대로 걷고 있는지가. 다행히 나는 얼추 제대로 걷고 있었다. 피드백을 받고 정리를 하다 보니 점점 더 '고객향' 책이 되어갔다. 이렇게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한 원고를 처음으로 출판사에 보여주었다. 전화나 문자로 답이 오는 대신 미팅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떨렸다. 애매한 성적은 아닐 듯했다. 100점이거나 0점일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강남역 근처에 위치한 출판사를 방문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마중 나온 담당자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미팅 룸에 들어가자 전에는 보지 못했던 편집자도 앉아 있었다. 짤막하게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적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 나는 원고에 대한 의도를 설명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출판사 관계자는 이내 한 마디를 했다.
"고칠게 거의 없던데요? 작가분들에게 초고를 받았을 때 이 정도로 완성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1%에 가까운 듯해요."
기뻤다. 아니 기쁘다기보다는 마음이 놓였다. 다양한 책을 출간하면서 독자에 대한 감각을 예리하게 키운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으니.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문득 두려움이 생겼다. 독자의 피드백을 받고 나서 출판사의 피드백까지 더 하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았는데 더 이상의 출판사 수정은 없을 듯했다. 내 책이 이대로 완성이라고? 이 원고가 완성본이라고? 마음이 급해졌다. 미팅이 끝나자마자 다시 원고를 보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아직 고칠게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편집자가 곧 '조판'에 들어간다고 했다.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MS 워드로 작업한 글을 인디자인이라는 책 출판 형태에 얹는 작업이라 했다. 이때부터는 큰 틀에서 내용 수정은 힘들어 보였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날 밤늦게까지 퇴고를 하고 또 했다. 새벽에 수정본을 이메일로 보내놓고 다소 편해진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