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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설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by 캡선생

우리는 모두 학창 시절에 인간 본성에 대한 세 가지 견해에 대해서 배웠다.


인간 본성은:

1) 선하다는, 맹자의 성선설

2) 악하다는, 순자의 성악설

3) 백지라는, 고자의 성무성악설


서양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세 가지 갈래가 있었지만 주된 사상은 성악설이었다. 스토아학파 및 장자크 루소를 필두로 한 성선설 진영과, 로크로 대표되는 성무성악설(tablu rasa) 진영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이면서 악한 존재로 본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종교, 경제학, 정치학 등의 학문이 자리를 잡았다.


서양의 문화와 사상이 전지구적으로 퍼지고 영향을 끼친 결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도 알게 모르게 성악설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우리’라는 말은 어쩌면 넘겨 짚기이고 나 또한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인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만난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바로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였다.


<휴먼카인드>는 성악설에 매몰된 다수의 인식에 대한 고독하지만 담대한 도전이다. 다수가 성악설의 근거로 삼는 유명 실험의 오류를 차례차례 밝히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오류를 넘어 조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매우 유명한 실험들이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의 근거로 언급되는 밀그램 실험(한나 아렌트는 이를 긍정한 적이 없지만)과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주어 영화로까지 제작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다.


필립 짐바르도는 40년 동안 수백 건의 인터뷰와 기사에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의 교도관은 아무 지시도 받지 않았다고 변함없이 주장해 왔다. 각종 규칙, 처벌 및 수감자들에게 가한 모욕 등 모든 것을 그들 스스로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 짐바르도는 재피를 그저 이 실험에 휩쓸린 평범한 교도관 중 한 명으로 묘사했다.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17가지 규칙 중 11가지를 재피가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인플루언셜, 2021. 중 -


밀그램은 연구가 끝난 뒤 참가자들에게 설문지를 보냈다. 그중 한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그 상황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이라고 생각했습니까?" 그가 마침내 발표한 답변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실험에 관한 자신의 저서 마지막 장에 실었다. 학습자에게 실제로 고통을 주고 있다고 믿은 피험자는 56퍼센트에 불과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밀그램의 연구 보조원 중 한 명이 끝내 발표하지 않은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격이 진짜라고 믿으면 그만두었다고 한다.

-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인플루언셜, 2021. 중 -


이 외에도 인간의 이기심으로 파멸에 이르렀다는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의 비극, 인간의 사소한 악함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더욱 커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 30여 명이 살인을 그저 방관했다는 방관자 효과 등도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놀라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성악설의 근거로 삼았던 다수의 실험과 이론이 거짓임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성악설에 대한 믿음에 균열을 내버린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성악설에 매몰된 나머지 성선설이 인간 본성의 삼지 선다의 중요한 항목임을 오랫동안 잊은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접할 수 있는 상당수의 정보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또한 핑계다. 그냥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면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그런데 누가 이러한 성악설을 퍼뜨리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이를 통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선설보다 성악설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긍정적인 뉴스(앞마당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렸다) 보다 부정적인 뉴스(앞마당에 사자가 나타났다)에 사람들은 더 기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언급한 '뉴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으로 이득을 얻는 산업은 성악설을 퍼뜨리고 강화하는 경향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면 통제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다른 말로 권력자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국가의 질서, 지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권력은 성선설이 아닌 성악설 위에서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권력은 성악설을 필요로 한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권력자에게 성악설은 효용가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이 말한 바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돌아보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마치 성악설이 근거로 삼는 실험들이 조작으로 밝혀졌듯이 말이다. 다만 이 책이 훌륭하다고 느껴지는 점은 성악설에 기운 우리들의 시각을 다시금 원점으로 돌려놓았다는 데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삼지 선다를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인간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도 말고, 무작정 기대하지도 않는 상태로 본성에 대한 판단 중지를 하고자 한다. 있는 그대로 인간 그리고 본성을 바라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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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Marek Studzin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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