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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사랑받는 이유? 기술보다 중요한 '이것'

by 캡선생


미국인으로 보이는 주방장이 가게에 들어온 한국인 할머니에게 구수한 말투로 "아이고 할머니 어디 갔다오셨어요?"라고 유창하게 한국어로 묻는다. 그러자 할머니는 한국어로 답한 뒤, 짧은 영어로 말을 건넨다. 그러자 주방장은 친절하게 영어 표현을 고쳐주고, 할머니는 갑자기 유창한 영어로 그 수정된 문장을 따라 말한다. 인터넷 교육 기업 ‘야나두’의 인스타그램 콘텐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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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놀랐던 건 이 자연스런 영상이 AI로 생성된 콘텐츠라는 사실이었다. AI 기술력이 어설펐을 때는 사람을 흉내내는 표현에서 묘하게 불편한 ‘기묘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이 발생했다. 이를테면 사람 얼굴을 그려도 만화 같지도, 실사 같지도 않은 어중간한 결과가 나와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골짜기를 넘어섰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아졌다.


여기에 더해, ‘어색할 수 있는 지점’을 ‘어색한 게 자연스러운 캐릭터’로 채운 것도 인상적이다. 외국인 단역 배우나 할머니 단역 배우는 어색한 연기를 해도 낯설지 않다. 우리는 그런 연기를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연기가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다 보니, AI가 만든 캐릭터가 다소 어색하더라도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구수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이나, 다정한 할머니는 우리에게 본능적으로 정감 가는 유형이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은 유독 호감도가 높다. 예컨대 한국 노래를 기막히게 부르는 그렉처럼, 말투까지 정겹게 구사한다면 그 호감은 더욱 커진다.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둘은 공통적으로, ‘무해해 보이는 존재’라는 속성을 갖는다.


AI 기술에 대한 불편함의 근원은 ‘인간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유해력이 그 근본적인 불안이다. ‘유해력’이란 해를 가할 수 있는 힘이며, 그 힘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렵다. 이에 반해 ‘무해력’은 애초에 해를 가할 수 있는 힘 자체가 없다고 느껴지는 상태다. ‘한국어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이나 ‘다정한 할머니’는 논리적 근거보다는 감정적으로 무해하게 느껴진다. 일본어 ‘후빈카와이(불쌍해서 귀엽다)’처럼, 나를 해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호감이 작동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보자. AI는 분명 강력한 도구다. 동시에, 막연한 불안감을 조정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럴 때 우리는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야나두의 콘텐츠는 그 하나의 힌트를 보여준다. AI가 기술적으로 얼마나 진보했는지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무해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를 입힘으로써 AI에 대한 감정의 장벽을 낮춘다.


결국 이 사례는 기술을 인간에게 더 가깝게 다가오게 만드는 방식에 대한 인사이트를 준다. AI의 진짜 힘은 기능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감싸고, 누구의 얼굴을 입힐지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의 결과를 만든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술의 진보를 ‘경계’가 아닌 ‘친근함’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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