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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르고 어다르고, 안다르고 밖다르다

by 캡선생


# 장면 1


출근길이었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게다가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사업가인지라,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직장인들과는 다르게 상하좌우, 동서남북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천천히 길을 걷는 편이다. 그날도 그렇게 걷던 중 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남성의 미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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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이질적이었다. ‘남성미를 살린다’고 했을 때와는 느낌이 꽤 달랐기 때문이다. 글자는 거의 비슷한데 어감은 전혀 다르다. ‘남성미’라고 하면 왠지 태닝한 근육질의 남성이 떠오른다. 반면 ‘남성의 미’라고 하면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지적인 이미지가 연상된다. ‘의’ 한 글자 차이지만, 메시지의 결은 완전히 달라진다.


브랜딩이란 결국 말의 선택이다. 같은 의미를 말하더라도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이미지와 감정은 전혀 달라진다. 그러니 '어떤 단어를 쓰느냐'는 단순한 표현 문제가 아니라 때로는 브랜드의 정체성까지 결정짓는 일이 된다.


# 장면 2


한여름의 무더운 날씨는 몸의 에너지를 빠르게 녹여낸다. 그래서인지 7말 8초에는 모든 에너지가 녹기 전에 사람들이 먼저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업가에게 여름 휴가가 어디있겠는가? 다만 남들이 쉴 때 일하려고 하면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집중도 잘 안 된다. 그래서 기분 전환 겸 예전에 종종 들르던 사당역의 한 카페로 향했다.


이 카페는 크지 않지만, 꽤 유명하다. 주말엔 늘 자리가 꽉 찼던 기억이 있어서 걱정했는데, 도착해보니 손님은 나 외에 한 명뿐이었다. 이곳도 휴가의 흔적이 느껴졌다. 내가 굳이 집이나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 대신, 이 더운 날씨에 사당역까지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창밖 풍경이 힙하기 때문이다. 이곳의 이름은 머치카페다.


인테리어나 커피 맛도 훌륭하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창밖’에 있다. 도쿄의 다이칸야마나, 상해의 우캉루와 같이 이웃나라의 세련된 동네 느낌이 난다. 전문 용어로는 차경(借景), 즉 ‘경치를 빌려온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오프라인 매장은 내부 인테리어에 집중한다. 하지만 정작 고객이 머무는 동안 시선을 두는 곳은 내부보다 바깥 풍경이다. 그러다 보니, 내부는 예쁘지만 외부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공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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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내부는 가게 밖의 사람을 끌어오지만, 예쁜 외부는 이미 들어온 고객의 재방문을 만든다. 사람은 만족감을 느낄 때 다시 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프라인 매장을 기획할 때는 외부 풍경까지 고려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게 꼭 ‘바다’, ‘강’, ‘산’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다. 맞은편의 건물, 길거리 풍경이 내가 만들고자 하는 무드를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머치카페는 그런 점에서 훌륭한 교보재가 되어준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서 시작해 ‘어떤 풍경을 보여주느냐’로 이어지는 경험의 설계. 간판의 한 글자 차이로 브랜드의 방향성이 결정되고, 창밖의 풍경 하나가 고객의 기억을 좌우한다. 표현은 섬세해야 하고, 공간은 의도적이어야 한다. 이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모든 마케팅 채널에 적용되는 통찰이다. 고객이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모두가 브랜드가 전달하는 메시지다. 그래서 단어 하나, 시선 하나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아야 한다.


퇴근 후 뭐하지?

글쓰기, 전자책, 브랜딩까지

회사 밖에서도 ‘내 이름’으로 살아남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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