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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전 춤추고, 밤새 책 읽는 사람들?

by 캡선생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바둑기사 이세돌은 자신의 책 <이세돌, 인생의 수 읽기>에서 인공지능의 창의성에 놀라움을 표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사례로 그는 ‘3-3 침입’을 언급했다. 바둑에서는 오랫동안 상대가 화점에 돌을 놓았을 때 바로 3-3 지점에 들어가는 수는 금기처럼 여겨졌다. 장기적으로 불리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6년 말, 강화 학습 기반으로 업그레이드된 알파고 마스터 버전은 이 고정관념을 깨고, 초반부터 3-3 침입을 과감히 시도했다. 인간이 회피하던 영역에 뛰어들며 오히려 전체 판의 흐름을 주도한 것이다. 이후 인간 기사들도 3-3 침입을 적극적으로 전략에 도입하게 되었고, 바둑의 오랜 금기가 단숨에 무너졌다. 인공지능은 단순히 계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수천 년간 유지된 인간의 ‘생각의 틀’마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최근 나는 이와 비슷한 현상을 또 하나 목격하고 있다. 바로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는 이래야 하고, 밤에는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하나둘 깨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주목한 두 가지 사례는 아침과 밤, 그 각각의 시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뒤집는다.


1. 이른 아침에 다함께 차, 차,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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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러 사람에게 추천해온 커뮤니티가 있다. 바로 SMCC(Seoul Morning Coffee Club)다. 이름 그대로 ‘출근 전 건강한 모닝 루틴’을 지향하는 이 커뮤니티는 평일 오전 8시부터 9시 사이에 커피를 마시며 하나의 주제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을 운영한다. 하루를 서둘러 시작하기보다는, 평소보다 1~2시간 일찍 일어나 커피 한 잔과 여유로 하루를 여는 방식이다.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아침’이라는 시간을 새롭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최근 SMCC는 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이름하여 SMCC 레이브. 아침 8시에 카페에 모여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행사다. 해외에서 틱톡을 통해 확산된 #coffeerave 트렌드에서 영감을 받은 이 이벤트는, 단 2주 만에 준비되었고, 첫 행사에 100명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 ‘아침에 춤을 춘다’는 낯선 발상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요한 아침을 스피커 볼륨과 리듬으로 깨우며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갔다. 최근에는 가수 크러쉬도 이 행사에 함께하며 더욱 화제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임이 유행을 이끄는 소수의 트렌드 세터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자리다. 꾸미지 않아도, 잘 추지 않아도 괜찮다. 아침을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모든 이를 위한 자리다. 출근 전 아침의 에너지를 커피와 대화, 그리고 음악과 몸짓으로 표현하는 이들은, 이제 아침을 ‘기상과 출근’의 시간에서 ‘표현과 창조’의 시간으로 바꾸고 있다.


2. 늦은 밤에 다함께 책, 책,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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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을 본능적으로 ‘쉬는 시간’이라 여긴다. 특히 금요일 밤, 이른바 ‘불금’은 한 주간의 피로를 술과 함께 풀어내는 시간으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이 시간에도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흐름이 있다. 바로 ‘북티크 심야서점’이다.


서울 신수동의 독립서점 북티크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혹은 토요일 밤, ‘심야서점’이라는 독서 모임을 연다.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서점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술이 아닌 책이 중심이 된다. 참가자들은 각자 책을 읽고, 야식을 나누며, 새벽 1시쯤에는 커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후엔 다시 몰입해 읽고, 새벽 4시부터는 글쓰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모든 흐름은 아주 조용하지만 강한 리듬을 갖고 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잔잔한 음악, 나직한 대화가 공간을 채운다. 북티크 심야서점은 단순한 ‘심야 독서 모임’이 아니다. 밤의 용도를 바꾸는 실험이자, 새로운 도시 생활의 제안이다.


이처럼 아침에 춤을 추고, 밤에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단지 특별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에 대해 갖고 있던 통념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이 바둑의 금기를 깨며 새로운 전략을 만들었듯, 이들은 ‘시간’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그 틀을 창조적으로 다시 쓰고 있다. 결국 변화는 거창한 혁신보다, 익숙한 일상의 작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아침엔 춤추면 안 될까?’, ‘왜 밤엔 책을 읽으면 안 될까?’라는 질문이, 우리의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강력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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