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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by 캡선생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 있다. “퇴사하고 유튜브나 해야지.” 이 말을 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퇴사를 하지도, 유튜브를 시작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구독자를 수십만, 수백만 보유한 유튜버의 삶이 부럽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돈도 많이 버는 그들을 어떻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과연 그럴까?


구독자 약 140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지식한입’에 어느 날 이런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140만 유튜버도 적자, 유튜브 하지 마세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영상마다 수십만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채널인데도 적자라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영상에 따르면, 콘텐츠 제작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단순 영상 조회수 광고 수익으로는 운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구독자 수는 많은데 영상 조회수는 턱없이 낮은 채널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 퀄리티의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 때문이다. 패트리온(Patreon)의 공동 창업자 잭 콘티(Jack Conte)는 이를 ‘팔로워의 종말(The Death of the Followers)’이라 부른다.


한때는 구독자 수가 곧 노출량이었다. 사람들이 구독한 채널의 콘텐츠를 플랫폼이 우선적으로 보여 줬다. 하지만 틱톡의 등장은 이 문법을 바꿔 버렸다. 이제는 누가 구독했느냐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우선 기준이 되었다. 얼마나 오래 시청했는지, 어느 부분에서 스크롤을 멈췄는지 같은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가 추천된다. 이 구조는 빠르게 반응을 수집하기 쉬운 숏폼 콘텐츠에 최적화돼 있다. 유전학에서 수 명이 짧은 초파리를 실험에 활용하듯 플랫폼도 짧은 콘텐츠로 사용자 반응을 더 빠르게 관찰하고 수집한다.


틱톡의 성공을 본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도 뒤늦게 각각 쇼츠와 릴스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짧은 콘텐츠를 통해 더 빠르게 사람들의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에선 기존 구독자에게 내 콘텐츠가 도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구독자의 시대가 끝나가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크리에이터 생태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미국의 흐름을 보면 해답의 실마리가 보인다. 요즘 미국 크리에이터들은 팟캐스트나 이메일 뉴스레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단순 노출이 아닌 ‘신뢰 기반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국의 연쇄 창업가 라이언 대니얼 모런(Ryan Daniel Moran)은 판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채널의 순서를 팟캐스트, 블로그, 이메일 리스트, 유튜브, SNS 순으로 보았다. 왜 팟캐스트와 뉴스레터가 주목받을까? 관계의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먼저 팟캐스트는 플랫폼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채널이다. 라디오의 속성을 닮았기 때문이다. TV와 라디오는 사용자 소비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TV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흥미로운 콘텐츠를 ‘선택’ 하는 반면, 라디오는 한 번 주파수를 맞추면 해당 채널을 계속 ‘유지’하며 듣게 된다. 이 ‘선택’과 ‘유지’의 차이가 곧 반복 노출 빈도의 차이를 만들고, 유대감의 깊이를 바꾼다.


방송인 전현무가 ‘국민 비호감’ 이미지를 벗고 ‘무디(전현‘무’ ‘디’제이)’라는 애칭을 얻은 것도 라디오 DJ로 활동한 덕분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에게는 어느새 정이 든다. 심리 학에서는 이를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라 부른다. 자주 접할수록 친근하게 느껴지는 현상이다.


오디오 콘텐츠의 가능성을 간파한 크리에이터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침착맨, 피식대학 같은 유튜브 기반의 인기 크리에이터들이 최근 팟캐스트 형식의 콘텐츠로 확장하는 중이다. 오디오는 충성도 높은 팬층을 만들기에 유리하고, 유튜브 알고리즘 변화에도 덜 민감하다는 강점이 있다. 실제로 유튜브 내에서는 비디오 콘텐츠를 오디오 전용으로 재구성하는 실험도 활발하다. 바밍 타이거의 ‘오메가 사피엔스’와 프로듀서 조준호가 진행하는 ‘슈즈오프 팟캐스트’는 이 흐름 속에서 빠르게 주목받고 있는 사례다(영상 콘텐츠이지만 음성 콘텐츠처럼 소비할 수 있는 팟캐스트 포맷이다).


팟캐스트가 기존 플랫폼 안에서 밀도를 높이는 전략이라면, 뉴스레터는 플랫폼 밖에서 나만의 채널을 만드는 전략이다. 주말랭이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황엄지 대표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처럼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은 나를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노출 알고리즘이나 플랫폼 정책에 휘둘리기 쉬운 구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반면 뉴스레터는 구독자의 메일함이라는 사적인 공간으로 직접 찾아가는 채널로, 알고리즘 없이도 능동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강조한다. 더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이처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채널에 눈을 돌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슬아 작가가 있다. 월 1만 원 구독료로 월요일부터 금요 일까지 메일을 보내는 ‘일간 이슬아’는 단단한 팬층을 만들었고, 어떤 플랫폼에도 끌려다니지 않는 강력한 퍼스널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이제 기민한 크리에이터들은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이메일, 디스코드, 텔레그램, 자체 웹사이트, 네이버 카페 등 알고리즘 없이 도달 가능한 채널로 확장하고 있다. 핵심은 하나다. 남의 플랫폼에 기대지 않고, 직접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채널은 빌린 집이지만, 이메일이나 카카오톡 리스트는 내 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연결이 끊기지 않는 힘이 퍼스널 브랜드의 지속력을 만든다.


앤디 워홀은 말했다. “미래에는 모두가 15분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 질 것이다.” 그 15분을 어디에 쓸지, 어디에 축적할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유행에 휘발될 것인가, 관계로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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