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그리고 헤세

by 캡선생

헤르만 헤세의 책은 적절한 모호함이 장점이라 생각한다.


종교나 철학에서 메타포를 끌어와 독자로 하여금 정속주행을 하게 만든다. 이야기를 한 번에 소비하게 두지 않고, 중간중간 “잠깐, 이게 무슨 뜻이지?” 하고 속도를 늦추게 한다. 그런데 그 메타포가 소수만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난해하진 않다. 대대수가 “오, 내가 이런 걸 발견했네!” 하는 지적 쾌감을 느낄 정도의 난이도에 머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헤세의 책을 인생책으로 꼽는 게 아닐까 싶다. 알면 알수록, 나이가 들수록 보이는 차원이 다채로워지니까.


알을 깨는 <데미안>을 보면 이런 면이 더 선명하다. 이 책에서는 ‘아프락사스’가 중요한 상징으로 읽히는데, 길게 보면 선/악, 빛/어둠 같은 이분법 자체를 흔드는 통합의 상징이고, 짧게 보면 기독교적 세계관을 뒤흔드는 영지주의적 문제제기처럼 보인다. 헤세는 기독교적 상징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틀을 비틀어 독자가 선/악 같은 경계선을 의심하게 만든다. “선만을 선이라 부르고 악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방식이 과연 온전한가?”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싯다르타>도 비슷한 결을 공유한다. 이 작품은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역사적 인물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소설이라기보다, ‘고타마’와 ‘싯다르타’를 분리해놓고 싯다르타라는 인물을 헤세의 상상력으로 자가발전시키며, 결국 어떤 깨달음의 결론으로 데려간다. 내가 느낀 그 결론은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라는 문장이다. 교리를 설명한다기보다, 진리를 하나의 문장으로 고정해버리는 순간 진리가 죽는다는 감각을 남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초기 불교의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불립문자를 외쳤던 달마의 향기가 겹쳐 보인다.


헤세의 다른 작품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데미안>과 <싯다르타> 두 권만 놓고 보면 그가 계속 밀어붙이는 메시지는 결국 경계에 대한 문제처럼 보인다. 선과 악의 경계를 흔들고, 진리와 비진리의 경계를 단단히 못 박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 독자가 스스로의 경계를 재정의하게 만든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경계 짓기’가 아니라 ‘경계가 느슨해진 상태’, 말하자면 무경계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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