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신은 앞머리만 있고 뒷머리가 없어서 뒤늦게 잡으려고 하면 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인생의 비극 중 하나는 기회는 지나고 나서야만 기회인 줄 알게 된다는 점이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 사진 출처: Greeker than the Greeks
나 또한 놓쳤던 기회들이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 평균 정도 놓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놓쳤던 기회 중 가장 컸던 것은 금액적으로 환산하면 수백억 대의 기회였다. 지금은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의 초기주요 멤버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더 정확하게는 굴러들어 온 복을 내가 찾다) 나는 그 당시에도 이 회사는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회사의 대표가 원하는 조건의 사람도 딱 나였다. 대표는 전용 리무진에 통역까지 대동해서 감동스러울정도로 나를 대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은 단지 해외에서 일한다는 것이 크게 내키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기본적으로 나는 어떠한 제안을 받았을 때 yes보다는 no를 해왔던 사람이었다. 기본값이 no였던 사람이어서 정말 내 마음에 들어야지만 yes를 해왔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해도 될 정도로 운이 좋은 삶을 살아온 것 같다. 그러나 수백억 대의 기회를 놓쳤던 것을 알고 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운명 같은 책을 만나게 되었고 각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될 일은 된다>로 번역된 <The Surrender Experiment>이다.
사진 출차: amazon.com
영문 제목처럼 저자가 우주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실험을 하는 내용의 책이다. 자신에게 오는 모든 제안을 우주의 부름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즉 우주에 무조건적인 Yes를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결국 본인이 원하던 것들을 대부분 이루게 된다.
이 책은 마치 우주가 나에게 "이제 그만 no 하고 yes좀 하거라!"라고 충고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도 우주에 yes를 해보기로 했다. 삶의 기본값을 no가 아닌 yes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물론 저자처럼 100% yes는 아니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사람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의 동물이기 때문에 내키지 않으면 그것을 거부할만한 명분과 이유를 기가 막히게 찾는다. 내가 yes를 하는데 늘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이 합리화와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일단 나의 삶의 가치와 방향성에 위배되지 않으면서규모가 작은 제안부터 yes라고 해보기 시작했다. 이 사소한 yes를 하는데도 초반에는 꽤나 큰 스트레스와 이름 모를 걱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점차 yes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 중 상당수는 고정관념 때문에 싫어했던 것이지 실제로는 내 취향이었던 것도 있었고, 나에게는 없는 재능이라고 치부했던 분야에서도 꽤나 잘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즉 취향과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 더 높은 위치에서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모든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터무니없는 결과 때문에 나에게 제안을 했던 사람이 밉기도 했고, 그것을 애초에 수락한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의 감정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어디까지 우주에게 yes라고 외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The Surrender Experiment>의 저자처럼 100% yes라고 할 수 있을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의 우주에 대한 기본값은 no가 아닌 ye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