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Nov 29. 2022

위대한 마케터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내가 동의하는 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행복은 우연히 찾아온다.

2. 행복은 타인에게 가치 있는 것을 줄 때 영수증처럼 주어진다.

3. 행복은 나를 잊을 정도로 몰입할 때 탄생한다


여기서 3번을 흔히 '나조차도 잊어버리는 지경' 즉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은 행복해지는 길일뿐만 아니라 위대한 마케터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마케팅의 정의는 수도 없이 다양하다. 필립 코틀러의 말을 참고하면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탐구/창출/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고, 내가 만난 수많은 클라이언트가 생각하는 바를 따르면 '더 많은 고객이, 더 자주, 기왕이면 더 비싼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게 만들어주는 넛지(Nudge: 타인의 선택을 부드럽게 유도) 같은 것'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정의가 있을 테지만 마케팅을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그 중심에는 '마케터'가 아닌 '고객'이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많은 마케터가 이를 종종 잊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었다. 고객을 잊고 마케터인 내 생각대로 마케팅을 했던 것이다.


초보 마케터는 모든 면에서 서툴기는 하지만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마케팅을 진행하기에 앞서 3C분석, 4P분석, SWOT분석 등 그 분석방법이 무엇이건 간에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끊임없이 탐구를 한다. 왜냐하면 부족한 경험을 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케팅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후에는 '고객'을 탐구하기보다는 '본인의 감'을 믿고 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꼼꼼하게 모든 것을 살피면서 수동 운전을 하다가 기존의 성공방정식이라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율주행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감만으로도 훌륭한 마케팅을 해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대형사고급 실패를 겪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와 정반대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경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하듯 고객의 마음 또한 변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대로 위대한 마케터는 지속적으로 무아지경에 빠진다. 마케팅을 함에 있어서 자신을 끊임없이 지워 나가는 것이다. 더 격한 말로는 끊임없이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장자의 '오상아(吾喪我)'라는 개념이 이를 심도 있게 보여준다.

吾喪我, 즉 "나는 나를 장례 지냈다"는 이 말을 좀 더 직설적이고 자극적으로 표현하면 '자기살해'라 할 수 있다. 똑똑하건 똑똑하지 않건 모든 사람은 다 각자 세계를 보는 나름대로의 시각, 즉 이론과 지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기준으로 세계와 관계한다.

그 이론이나 지적 체계들, 가치관이나 신념이나 이념들은 사실 생산되자마자 부패가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그 부패되고 있는 신념이나 이념을 매우 강력하고 분명한 가치관으로 신봉하면서 그것으로 무장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들로 채워져있는 가치의 결탁물이다.

장자는 가치의 결탁물인 자기를 '아(我)'로 표현하고, 가치의 결탁을 끊고, 즉 기존의 자기를 살해하고 새로 태어난 자기를 '오(吾)'로 새겼다. 가치관으로 결탁된 자기를 살해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드러날 수 없다.

자기살해를 거친 다음에야 참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등장한다.   

- 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21세기북스, 2018) 중 -


장자가 '오상아'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참된 인간' '진인(眞人)'이었지만 이를 위대한 마케터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나를 죽여야만 고객이 들어 공백이 생기고, 또한 기존의 나를 죽여야만 낡은 패러다임에 갇힌 나를 구원할 수 있다. 고객 중심의 신선한 마케팅은 이처럼 '나'라는 존재를 죽인 그래서 내가 잊힌 무아지경에서 달성할 수 있다.


관성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면 무아지경에 한 번 빠져보자. 기존의 나의 경험과 지식을 지우고 궁극적으로는 '나'를 잊고 고객에 몰입해보자. 그리고 위대한 마케터가 되어보자.



P.S. 참고로 마약으로 연상되는 '엑스터시'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ἔκστασις 다. 그리고 이는 '밖에(ek)' '서다(stasis)'라는 뜻으로 무아지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top8



Photo by Thea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매출까지 책임지는 광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