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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Sep 22. 2022

월급 중독자를 위한 해독제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

 등장인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일부 각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커피빈에서 한가롭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첫마디부터 심상치 않았다.



캡선생 도와줘!



그는 대학 선배였다. 지인들이 장난으로 내 이름 대신 부캐명인 캡선생으로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캡선생'이라는 장난스러운 명칭과 '도와줘'라는 심각한 요청의 조합 마치 "미역국에 콜라 좀 부어줘"처럼 기이하게 들렸다. (물론 이런 조합을 즐기는 분의 취향은 존중합니다).


그는 지금 바로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2시간 후에 근처 건물에서 강의를 해야 해서 어려운 상황임을 알렸다. 그러자 그는 바로 택시를 타고 오겠다고 말을 했다. 딱 30분만 달라고.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전화를 끊은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카페에 도착했다.


외국계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최근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회사가 비밀리에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임원이었던 그는 일반직원과는 다르게 매년 새로 계약을 해야 했다. 이 말인즉슨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 바로 무직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계약은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예전 직장에서도, 그리고 새롭게 이직한 지금 회사에서도 꽤나 좋은 실적을 보여왔기에 이런 일이 본인에게 벌어질지는 단 1%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이었기에 그의 충격은 더욱 심각해 보였다. 문득 나심 탈레브가 말한 '추수감사절의 칠면조'가 떠올랐다.


칠면조는 도살업자가 주는 먹이를 수천일 넘게 먹는다. 그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높은 확률로 도살업자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된다. 단, 추수감사절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만 말이다. 이때야 비로소 칠면조는 자신의 믿음을 뒤엎는 블랙스완을 만나게 된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Antifragile> 중 -
* 본인 번역 (일부 의역 및 보충)


책을 읽을 당시 추수감사절에 사람들의 식탁 위에 오르는 칠면조 직장생활을 하 '나'와 닮아있다고 느꼈다.


직장인들은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다 보 이러한 안정적인 삶이 영원할 것만 같다 착각에 빠진. 그러다 반강제적으로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제 나 혼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월급이라는 중독성 강한 마약을 한순간에 끊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충격을 받은 대학 선배에게 당연히 '칠면조'이야기는 할 수 없었고, 대신 이렇게 중요한 상황에서 왜 하고많은 사람 중에 후배인 나에게 연락을 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심플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가 퇴사 선배잖아. 이직 생각 없는 그런 퇴사 말이야.



그의 말대로 나는 6년 전에 이직 생각 없이 퇴사를 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주도적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것이 아닌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수동적으로 생활해야만 하는 대기업 생활에 조금 멀미가 나고 그래서 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충만했기에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퇴사하고 나서 뒤늦게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잘나서 얻은 결과 혹은 대우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대기업 타이틀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회사 타이틀을 떼고 나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초저금리로 대출을 해주던 은행은 대출 연장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고, 친하게 지내던 파트너사 관계자들 중 일부는 내 연락을 받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대기업을 다닐 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느끼게 되었다(물론 자격지심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회사를 다닌 기간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마케터로서의 역량과 사회인으로서의 능숙함 모두 키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대기업의 후광으로 다소나마 주목을 받았던 somebody는 퇴사 후 그 누구도 관심 없는 nobody가 된 것이다.


그때 내 눈에 띈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 다르게 회사 타이틀을 떼도 유명한 회사 선후배들. 그들은 회사를 다닐 때도 적극적으로 사내방송 혹은 TV나 유튜브 등의 방송에 나와 자신의 전문성을 알렸고, 몇몇은 책까지 출간하여 회사원이면서 유명 작가였다. 그들은 단순히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필 한 줄에 @@회사가 붙는 사람이었다. 즉 퍼스널 브랜드가 강력한 사람이었다.


기질적으로 나를 노출하는 모든 행위를 싫어했기에,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와도 무조건 거부를 하곤 했는데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를 최소한으로 노출하면서도 브랜딩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본명이 아닌 '캡선생'이라는 부캐명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캐명으로 다양한 오프라인 모임에서 강의 및 모임장을 했고 온라인에서는 팟캐스트 방송을 운영하면서 조금씩 캡선생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나갔다.


창업을 하면서 회사와 회사 멤버를 위해서도 나를 알리는 활동이 더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창업자가 유명할수록 더 좋은 인재를 유치할 수 있고, 또한 더 좋은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어 멤버들에게도 더 값어치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창업자가 유명하면 얻을 수 있는 점들이 많았다. 그래서 다소 소극적이었던 퍼스널 브랜딩을 창업 이후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글을 쓰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직장 선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퍼스널 브랜딩 해요. 말하는 게 나아요? 글 쓰는 게 나아요?



퍼스널 브랜딩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나는 일단 그에게 '말'과 '글' 중 하나를 택해서 본인의 전문성을 알리라고 했다. 그는 글을 한 번 써보겠다고 말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건축가 유현준 교수도 글쓰기를 통해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다.


사무실 독립 이후로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일이 들어오지 않아 운영이 어려운 시기가 무려 15년 동안 계속됐다는 설명. 유현준 교수는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대출을 많이 받았다. 대출을 받아 월급을 주고 돈이 생기면 갚고. 그런 시기를 지혜롭게 넘기는 방법은 없더라. 그냥 버티는 거였다. 제가 글을 쓰게 된 것도 이게 계기가 됐다. 할 일이 없는데 누가 신문 칼럼 3편만 쓰지 않겠냐고. 1편당 15만 원을 준다고 해서 칼럼을 쓰게 됐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해당 칼럼이 유현준 교수에겐 기회가 됐다. 유현준 교수는 "의외로 재밌다고 해주셔서 고정 칼럼 제안을 받고 그걸 모아 책을 냈다. 그 책으로 방송에 출연하게 되니 일이 생기고 선순환이 됐다.

서유나, 'MIT→하버드' 건축가 유현준 "학벌 집착, 승진 누락으로 울던 父 때문에"(차클)[어제TV], 20211108, 뉴스엔


워낙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라 그는 내 말을 듣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업계 전문지에 글을 기고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글쓰기의 영향인지 아니면 갑작스러운 운이 작용했는지 그의 인생은 너무나도 잘 풀렸다. 그가 꿈꿔왔던 대학교 겸임교수에 발탁이 되었고, 기존 회사를 그만둠과 동시에 더 높은 연봉과 더 나은 근무조건을 제시한 외국계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나중에 와 만나 이때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 때문만에 잘 풀렸는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글을 쓰고 나를 알리면서 자신감이 생겼어. 그래서 생각만 했던 사업도 곧 해보려고.



내가 그러했듯 그도 월급 중독으로부터 해독이 된 듯 보였다.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해독제를 통해.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Photo by Kyle Clevelan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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