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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Oct 10. 2022

모든 인간은 모순적이다 - P.S.


'모든 인간은 모순적이다'라는 글에서 못다 한 말이 있었다. (이 글을 2부로 칭하기도, 에필로그라 말하기도 애매해서 적당한 말을 찾다가 딱히 없어서 일단 P.S.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https://brunch.co.kr/@kap/254


모든 인간이 모순적이라고 말하면서 구체적인 사례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인간의 삶 자체가 모순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례를 말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가 그렇게 모순적인지 의아해할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예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 친환경과 먹방


친환경은 이제 대세를 넘어 기본값이 되었다. 제품에 하자가 없어도 친환경이 아니면 불량품처럼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친환경 제품을 쓰는 것보다 좋은 것은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테지만 다양한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소비를 함으로써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친환경 제품을 더욱 고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즐겁게 먹으면 살 안 쪄'와 같은 마인드로 말이다.


소비에서 오는 죄책감이 덜한 영역 중 하나는 음식이다. 다른 소비는 줄여도 먹는 것을 줄일 수는 없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냐"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런데 생존과 미식을 넘어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소재로서의 음식은 친환경을 생각한다면 경계를 해야 한다. '먹방'을 필두로 먹는 것과 관련된 방송의 대부분은 과소비를 지향한다. 즉 적당한 양의 음식이 아닌 한 사람이 다 먹기 힘들어 보이는 엄청난 양을 먹는 것을 강조한다. 심지어 음식을 적게 먹는 연예인은 개선되어야 할 대상으로 그리기도 한다.


그런데 친환경을 생각한다면 이는 모순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음식을 적게 먹는 사람은 환경을 위한 행동을, 반대의 경우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에 있어서 이산화탄소보다 20배 이상의 영향을 주는 메탄가스를 뿜는 주범이 소를 비롯한 가축이다. 우리가 식량으로 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이 환경에는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식량은 그것을 생산하고 운반하고 포장하는데 필연적으로 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환경을 위해 먹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소비와 마찬가지로 음식 또한 필요한 만큼 섭취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친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은 '먹방'과 같은 행위를 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 이 둘이 공존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2. 남이 하면 오지랖 내가 하면 관심


예전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이라 불렸던 문화가 어느 순간 '오지랖 넓음'으로 규정돼버린 것 같다. 나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타인에게 필요한 물질적 혹은 정신적 무언가를 주는 행위가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점점 더 불편해지는 것이다. 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라 예전부터 내가 요구하지 않은 무언가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선물조차도. 그래서 이렇게 '오지랖 넓음'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인식 변화가 달가운 편이었다.


내가 타인의 간섭과 조언을 달가워하지 않는 만큼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군가가 도움 혹은 조언을 구하지 않으면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인터넷을 보면 본인은 간섭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타인의 삶에 대해서는 쉽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지금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백종원도 나이차가 많이 나는 소유진과 결혼할 당시에는 밑도 끝도 없는 비난을 받았다. 사람들은 백종원이라는 사람도 또한 그들의 사이도 잘 모르지만 나이 차가 많이 난다는 단 하나의 사실로 성급한 의견을 쏟아낸 것이다.


이런 의견에 일반인과 공인은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연예인이 공인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간섭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일상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적이지 않은 삶의 궤적을 그리는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조언을 쏟아내는지 보면 말이다.


내가 당하면 오지랖, 내가 하면 관심인 것이다. 모순을 피하기 위한 합리화의 모습이다.



3.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곳이 획일적


국내여행을 하면서 전국 각지의 다양한 독립서점을 방문했다(숫자는 세보지 않았지만 최소 50여 곳은 되는 것 같다). 독립서점에 방문하면 무조건 책 한 권은 사서 나오려고 하는데 이는 창작자를 지지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런데 다양성을 표방하는 서점에 갈 때마다 고를 책이 많지 않아서 난감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하는 서점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동일한 책들만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성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오히려 내가 전혀 몰랐던 좋은 책을 만났던 대부분의 서점은 다양성을 추구하지 않았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서점은 방문 전에도 구비된 책 리스트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곳이 가장 획일적이라는 모순을 독립서점에 갈 때마다 경험하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모순적이다. 분명히 타인을 까는 글은 최대한 지양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불특정 다수를 까는 뉘앙스의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제목처럼 인간은 모두 모순적인 것을.


모순적인 인간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모순을 없애는 것이 아닌 본인이 모순적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자각을 하며 모순적인 인간의 모순적인 글을 마쳐볼까 한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Photo by 愚木混株 cdd20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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