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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n 29. 2022

모든 인간은 모순적이다

모순(矛盾)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 '모순(矛盾)'은 사실 '창(矛)과 방패(盾)'라는 뜻이다.


전국시대 초나라에 무기 상인이 있었다. 그는 시장으로 창과 방패를 팔러 나갔다. 상인은 가지고 온 방패를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 방패를 보십시오. 아주 견고하여 어떤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창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여기 이 창을 보십시오. 이것의 예리함은 천하일품, 어떤 방패라도 단번에 뚫어 버립니다.」 그러자 구경꾼 중에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 예리하기 짝이 없는 창으로 그 견고하기 짝이 없는 방패를 찌르면 도대체 어찌 되는 거요?」 상인은 말문이 막혀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다가 서둘러 달아나고 말았다.

- 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중 -



위 이야기처럼 모순적이라는 말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세상에 모순적이지 않은 인간이 있나?


크고 작든 간에 모든 인간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말이다.



1. 변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강물이 똑같지 않을뿐더러
발을 담근 인간도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초만 지나도 강물은 똑같은 강물이 아니게 되고, 그 강물에 발을 담근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래서 같은 말도 시공간의 변화에 따라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예를 들어 "얼굴이 보름달 같다"는 말이 특정 시공간에서는 "보름달 같이 복스럽고 이쁘다"는 긍정적 의미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시공간에서는 "얼굴에 살이 많아 터질 것 같이 크다"라는 부정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이 아무리 일관성 있게 이야기를 해도 주위의 변화에 의해 그 사람은 모순적인 사람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한다. 그러다 보니 나의 생각도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했던 말과 지금 하는 말이 앞뒤가 딱 맞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오히려 기계적인 일관성에 집착하다 보면 변화하는 실제의 나와 추구하는 이상적인 나 사이에 괴리가 생겨 아수라 백작 같은 뒤틀린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2. 상대성


문제를 하나 내보겠다.


이것은 크면서 작고, 가벼우면서 무겁고, 또한 빠르면서 느리다. 이것은 무엇일까?



혹시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절대성에 기초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이 수수께끼를 잘 맞추지 못하고 상대성에 기초한 사람들은 잘 맞추는 것 같다.


정답은 세상 거의 모든 것이다.


사람을 예로 들어 보겠다. 농구선수 서장훈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크면서 무겁고 빠를 것이다. 그러나 샤킬 오닐 보다는 작고 가벼우면서, 우사인 볼트보다는 느리다. 이처럼 세상 거의 모든 것은 양가적이다. 극단적인 두 개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비교대상이 나타나면 한 가지 성질로 확정되는 것이다.


이는 양자역학이 말하는 바와도 비슷하다. 양자역학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한 사고 실험은 아마도 슈뢰딩거의 고양이일 것이다. (다만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은 상대성이라기보다는 상보성이다. 복잡한 이야기이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사진 출처: wikipedia.com
슈뢰딩거의 고양이 (Schrodinger's Cat)

[사고 실험]

어떤 고양이가 밀폐된 상자 안에 갇혀 있다. 상자 안에는 1시간에 2분의 1 확률로 1개 분해되는 알파입자 가속기가 있고 청산가리 통이 들어 있다. 만약 알파입자가 방출되어 청산가리 통의 센서가 감지하면 청산가리 통은 깨지고 고양이는 죽고 만다. 1시간 후 과연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해설]

사고 실험에서 알파입자는 미시세계의 것이고 양자역학으로 서술된다. 그것이 거시 세계의 고양이를 죽이느냐 살리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각 물리학적 입장에 따라 고양이가 죽었을까 살았을까에 대한 답변은 다르다. 고전 역학자들은 실재론자들이며 우리가 그것을 확인하든 안 하든 고양이는 죽었거나 안 죽었거나이다.

1시간 후의 일은 어떻게든 결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관찰과 무관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양자론자들은 관측에 지배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았거나이고 우리가 그것을 열어봤을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즉, 그것의 결과는 관측에 의존한다. 하나는 결정론적인 사고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비결정론적인 사고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슈뢰딩거 고양이 사고 실험은 양자 물리학에서 관측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중 -



위에서 한 이야기를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밀폐된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서두에 말한 모든 것을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과 같 모순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 모순으로 가득한 것이 우주를 구성하는 양자의 세계이고 과학의 세계인 것이다.



크게 변화와 상대성을 통해 인간이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 글도 추후에 내가 쓸 글을 통해 반박이 되거나 혹은 반대로 지금 이글이 추후에 쓸 글을 반박하는 모순적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사람인 것을.



<같이 보면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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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atrick Hendr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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