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대부분은 "나 정도면 교양 있지"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그러면 질문을 살짝 바꿔보겠다.
교양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교양이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꽤나 자주 쓰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교양이라는 말은 지성, 품격과 같이 긍정적인 의미일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속내는 그렇지 않은데 점잖은 척하는 일종의 가식처럼 부정적인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모호할 수도 있는 교양이라는 개념을 작가 우치다 다쓰루는 <거리의 현대사상>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교양이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것, 즉 자신의 무지에 대한 지식이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는 교양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아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 질문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정치인 도널드 럼스펠드의 도움을 받아보면 좋을 것 같다.
도널드 럼스펠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구분했다.
1.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아는 영역인 사실(Fact)
2.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영역인 질문(Question)
3. 우리가 안다는 것을 모르는 영역인 직관(Intuition)
4.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영역인 탐구(Exploration)
이 네 가지 분류에서 우치다 다쓰루가 정의한 교양은 2번 '질문'에 해당한다. 즉 교양 있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에 '질문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교양인의 표본이라고 했던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사람들이 질릴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는 교양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기관을 우리는 '유치원'이라고 부른다. (왜냐고? 이런 질문을 한 여러분도 교양인이다)
이처럼 교양인을 교양인일 수 있게 하는 것은 '본인이 모른다는 자각',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