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PT에서 클라이언트의 질문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모른다고 대답하는 대행사 대표 C. 그의 태도는 흡사 세상 모두가 모르는 것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만이 갖고 있을 법한 당당함이었다. 그의 당당함에 놀랐고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부끄러웠다. 나였으면 어떻게라도 임기응변을 통해 말하려고 애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설령 개소리일지라도 말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와 C가 대표로 있는 회사가 컨소시엄으로 함께 비딩에 참여했다. PT는 대표인 C가 담당하기로 했다. 그는 업계에서 꽤나 유명하고 인정받는 사람이었기에 해당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면서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바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였다.
사실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와는 전혀 무관한 지엽적인 질문을 던졌다. 해당 질문은 PT를 하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종의 압박면접 혹은 기선제압의 목적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악의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런 질문에 쩔쩔매면서 당황해하는 대행사 대표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표 C의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용기'에 이은 다음 말에 오히려 질문자가 당황을 했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해당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 저희가 답을 드리기는 힘듭니다. 해당 질문이 어떠한 이유로 이번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는지 설명해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파악하여 추후에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PT는 순조롭게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해당 프로젝트는 우리가 따냈다.
그동안 수많은 브랜드 컨설팅과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클라이언트가 궁금해하는 그래서 질문하는 것에 대해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이 강박관념 덕분에 많은 지식을 쌓으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클라이언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최대한 아는 것처럼 말하는 내 모습을 보며 "이게 맞는 건가?"라는 고민도 했다. 그러나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나의 전문성이 훼손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쉽사리 모른다는 말을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대표 C의 당당함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의 용기와 솔직함은 상대에게 더 큰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때로는 지(知) 보다 무지(無知)의 지(知)가 더 설득력이 있음을 그래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함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