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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pr 17. 2022

'말'의 본질은 소통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를 갖고 있는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입니다


생물학자 마크 파겔(Mark Pagel)은 파푸아뉴기니에 가면 하나의 섬 안에서 800개에서 1000개나 되는 서로 다른 자연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위와 같이 말했다. (참조 문헌: 사사키 겐이치,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뮤진트리, 2019.)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동일한 '말'을 하는 게 맞지 않은가? '말'의 본질이 소통이라면 말이다. 인구밀도가 낮아서 띄엄띄엄 사람들이 있을 경우에는 물리적 거리라는 장벽으로 인 '말'이 달라진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여기서 '말'의 본질이 소통과 불통의 양면성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의문점이 사라지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러분도 이러한 '불통'적 말을 사용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1. 10대의 은어


10대는 기본적으로 기성세대와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다. 기업 컨설팅을 하면서 10대가 카톡(카카오톡)보다는 페메(페이스북 메시지)를 더 즐겨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고 그 이유를 알아보았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공통점은 바로 "부모님이 있는 채널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였다.


그리고 10대는 기성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말'을 만든다. 기성세대와의 불통을 위한 '말'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10대의 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 왔으니까 말이다.

사진 출처: 국민일보


2. 전문직의 전문용어


CTR도 낮고 CVR도 낮으니 ROAS는 낮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소재와 랜딩페이지 A/B 테스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서 효율을 높여야 할 것 같습니다


마케팅을 하는 분들은 위의 '말'을 잘 이해할 것이다. 그렇지만 마케팅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 불통의 '말'일 것이다.


전문가 극단적으로 정의하면 "그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있어 보이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불통의 말'을 멋들어지게 구사하는 사람들을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병원에 가서 진료받을 때 의사가 진료기록지에 적는 말을 이해하는 환자가 몇이나 될까? 이처럼 모든 전문영역은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불통의 말'을 구사함으로써 그 영역을 공고히 하려는 경향성을 보인다.


3. 상류층의 언어


인간은 구별 짓기를 하고 싶어 한다. 특히나 상류층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은 더더욱 말이다.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불통의 말'을 쓰려고 하는 상류층의 경향성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적으로 보이는 편이다. 17세기까지 영국에서는 프랑스어가 상류층의 언어로 쓰였고, 현재도 상류층은 Posh English라고 다른 계층과 구별되는 발음과 어휘의 영어를 구사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90년대까지 지식인 계층에서 '한글'로 써도 되는 것을 굳이 '한자'로만 쓰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 상류층의 언어라는 자리를 오랫동안 굳건히 차지했던 '한자(중국어)'는 현재 그 자리를 '영어'에게 내준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모국어로 번역할 수 없는 용어를 정확하게 설명해야 할 때는 부득이 외국어를 쓸 수밖에 없기도 하다.)

 

4. 연인 간의 애칭


가끔 연인들을 보면 주위 사람들이 안 보이나 싶을 정도의 애정행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세상 모두가 사라지고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그 느낌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 느낌을 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인들은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을 지워나간다. 즉 세상과의 불통을 통해 그들의 소통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연인 간의 애칭일 것이다. 줄임말, 의성어 등을 활용하여 설명하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외계어로 서로를 지칭한다. 그들만의 외계를 만들면서 말이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꼽히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주장했던 '그림 이론'을 스스로 뒤집고 후에 '게임 이론'으로 수정해서 이야기했는데, 이는 바로 '말'의 양면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말도 게임(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말'은 소통의 역할도 하지만 불통의 역할도 한다. 그것이 말의 본질일 것이다. 



Photo by Towfiqu Barbhuiy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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