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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Oct 11. 2022

온라인에서 다른 의견을 대하는 태도


브런치와 같이 공개된 곳에 글을 쓰다 보니 때때로 나와 다른 의견의 댓글을 마주하게 된다.


최대한 배려하면서 부드럽게 의견을 전하는 사람도 있고, 감정을 작정하고 건드리겠다는 듯이 날이 서있거나 비꼬는 듯한 투로 의견을 전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악플이고 무엇이 건설적인 비판인지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한 건은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의견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견을 존중하려고 했고 최대한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노력을 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황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이다. 이를 이야기하기 전사단칠정론에 대해 알아두면 더 좋을 듯하다. (스킵해도 무방하다)


사단칠정론 [四端七情論]

사단(四端)이란 맹자(孟子)가 실천도덕의 근간으로 삼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하며, 칠정(七情)이란 《예기(禮記)》와 《중용(中庸)》에 나오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慾)을 말한다.

이황은, 사단이란 이(理)에서 나오는 마음이고 칠정이란 기(氣)에서 나오는 마음이라 하였으며, 인간의 마음은 이와 기를 함께 지니고 있지만, 마음의 작용은 이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과 기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즉 선과 악이 섞이지 않은 마음의 작용인 4단은 이의 발동에 속하는 것으로, 이것은 인성(人性)에 있어 본연의 성(性)과 기질(氣質)의 성(性)이 다른 것과 같다고 하여 이른바 주리론적(主理論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였다.

이황의 이러한 학설은 그 후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켜 200여 년 간에 걸쳐 유명한 사칠변론(四七辯論)을 일으킨 서막이 되었다. 즉 기대승(奇大升)은 이황에게 질문서를 보내어, 이와 기는 관념적으로는 구분할 수 있으나 구체적인 마음의 작용에서는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을 내세웠으며, 이를 다시 이이(李珥)가 뒷받침하여 이기이원론적 일원론(理氣二元論的一元論)을 말하여 이황의 영남학파(嶺南學派)와 이이의 기호학파(畿湖學派)가 대립, 부단한 논쟁이 계속되었다. 이는 마침내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사이에 벌어진 당쟁(黨爭)의 이론적인 근거가 되기에 이르렀다.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중 -


조선 중기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퇴계 이황은 본인보다 26살이나 어리고 막 과거에 합격하여 초임 관리가 된 기대승이 본인에게 제기한 반론을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고 답해줬다. 무려 8년 동안이나. '사단칠정논쟁'으로 알려진 이 사건을 통해 기대승뿐만 아니라 이황도 본인의 이론을 끊임없이 수정 보완해 나갔다. 둘은 '사단칠정론'과 관련하여 합의점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건설적인 논쟁을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황 정도의 나이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본인보다 한참이나 어리고 지위도 낮은 사람의 의견을 이처럼 존중하고 경청한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조선시대보다 나이와 지위가 현저히 적은 영향을 끼치는 현재도 이러한 사람을 보기는 상당히 힘들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말이다.


퇴계 이황과 같이 그게 누구의 의견이건 모든 의견을 존중하고 필요하다면 건설적인 토론을 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어떠한 댓글에도(심지어 악플로 보이는 댓글도) 정성스럽게 답을 했다. 그러나 이것이 대부분 시간낭비에 가깝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정성스레 대댓글을 달아도 대부분의 경우 나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은 소리 없는 메아리가 되어 사라졌다.


이황과 기대승의 이야기에서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상호 존중'이다. 기대승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대선배였던 이황에 대한 존중을 갖고 반론을 제기했고 그 마음을 알고 있었던 이황 또한 동일한 존중을 하면서 기대승의 반론에 재반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은 상호 존중은커녕 서로에 대해 잘 알기도 힘든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설적인 비판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이러한 깨달음 이후 얼굴을 보고 하는 대화가 아닌 이상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긴 시간을 들여 답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나의 의견을 지적하는 타인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확률적으로 그것에 시간을 썼을 때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짧은 경험과 식견에 따른 부족한 생각과 결론일 수도 있지만 일단 온라인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대하는 시간은 최소화하고자 한다. 상호 존중이 결여된 다양성 현재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고 나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이곳에 쓰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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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riia Shalabaiev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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