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좋은 리더보다는 나쁜 리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참여자들은 본인 회사의 나쁜 리더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그곳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은 격한 공감을 표했다. 즉 나쁜 리더에 대한 공통된 이미지가 있었다. 이와 반대로 좋은 리더에 대한 이미지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따뜻한 성품의 리더', '카리스마 있는 리더', '현실적인 리더', '꿈이 원대한 리더' '본인 의견이 뚜렷하고 명확하게 지시하는 리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유연하게 의견을 바꾸는 리더' 등등.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는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를 리더십에 빗대어보면 "나쁜 리더는 비슷한 이유로 나쁘지만, 좋은 리더는 저마다의 이유로 좋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양한 의견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다음과 같이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핵심을 말했다.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요
이 대답은 내 머리가 아닌 몸에서 나왔다. 즉 책으로 배운 내용이 아닌 몸으로 부딪히면서 깨달은 내용이다. 이를 세 가지 장면을 통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장면 1: 대학교 연극동아리 시절
대학교 시절 얼떨결에 연극동아리 회장 및 연출을 맡게 되었다. 우리 학번과 선배 학번 간의 불화로 인해 다수의 사람이 우르르 동아리를 탈퇴하게 되었고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 나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모든 직책을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친구 따라 동아리에 가입한 것이어서 연극에 대한 관심도 열정도 가장 부족한 사람이 나였는데, 이런 사람이 모든 중책을 떠맡게 된 것이다. 나를 믿고 동아리에 남은 후배들도 있는 상황이어서 책임감을 갖고 맡은 임무를 잘 해내야만 했다.
대학생이 특히나 연극 경험이 없는 대학생이 연극을 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나를 후배들이 믿고 따를 수 있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수의 대학생은 즐겁게 놀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기회로 삼는 여름방학 내내 연극 연습만 해야 했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솔선수범이었다. 누구보다 일찍 동아리방에 도착해서 가장 늦게까지 연습 및 지도를 하고 내가 맡은 배역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의 대사를 외우는 모습을 보여주며 후배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후배가 했으면 하는 것을 내가 먼저 실천하면서 동아리를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대망의 연극 날2회 공연을 무사히 진행했고 100명이 넘는 관객이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준 후배에 대한 감사와 함께 리더십에 대한 나만의 방향성을 설정하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장면 2: 공군 어학장교 시절
공군 어학장교는 토익/토플 만점자도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 합격하기 굉장히 어려운 군 보직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영국의 옥스브리지(옥스퍼드 대학교와 캠브리지 대학교를 통칭) 등 세계적인 명문대 출신이 매 기수마다 다수를 차지하고 그들의 프라이드 또한 대단해서 웬만하면 누구의 말을 순순히 듣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상대적으로 엘리트라고 칭할 수 없는 내가 20명 이상의 어학장교 후배를 관리하는 최선임으로서일을 해야만 했다. 출신 학교뿐만 아니라 영어 실력도 후배들에 비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는 나였기에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대학교 때 그러했듯 솔선수범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모두가 하기 꺼려하는 일을 먼저 해내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것을 실천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안 좋은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자 했다. 후배가 잘못을 했을 때 무조건 나에게 먼저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대표로 모든 사건의 책임을 지고 상사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를 잘 따르지 않던 후배들도 차츰 나를 믿고 따라와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소 삐그덕 거리기도 했지만 막판에 가서는 후배들이 알아서 본인 후배를 위해 솔선수범을 하는 등 내가 원했던 조직의 모습을 만들어갔다.
장면 3: 현재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은 '멤버들이 했으면 하는 행동을 내가 먼저 하고 있나?'이다. 자율출근제라면 상관없지만 근무시간이 정해진 우리 같은 회사(특히나 중소기업)에서 출퇴근 시간이 지켜지지 않으면 구멍가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것은 반드시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초창기에 사업의 틀을 만들어가던 시기를 제외하고 4년 동안 단 한 번도 지각 및 무단결근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다른 회사에서 골머리를 앓는 지각이나 무단결근 문제가 우리 회사에서는 없다.
그리고 멤버 간의 유대감은 인사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서 가능하면 내가 먼저 인사하려고 노력한다. 소소하다면 소소한 일일 수 있지만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조직의 문화가 되었으면 하는 부분은 솔선수범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니고 업력도 오래되지 않은 내가 리더십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우스워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나에게 이러한 솔선수범이 리더십으로서 효과를 발휘한 것은 분명하다. 물론 갈길이 아직 멀긴 하지만.
조셉 칠턴 피어스는 "교사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가르친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 말이 가르침뿐만 아니라 리더십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십은 직원이 했으면 하는 행동을 지시하기보다 본보기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솔선수범을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