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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Oct 13. 2022

듣기 좋은 거짓말과 듣기 싫은 진실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를 읽고


운동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몸도 엉망이지만 매우 착한 트레이너에게 PT를 받을 생각이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트레이너에게 비싼 돈과 소중한 시간을 지불해가며 PT를 받는 이유는 내 몸을 위해서이지 심리상담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트레이너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질은 '운동에 대한 전문성'이고 착한 성격은 부가적인 것이다.


그런데 지식인은 이와 다소 다르게 대하는 것 같다. 전문지식이 부족하거나 혹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듣기 좋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는 걸 보면 말이다.


근거나 논리는 없고 "착하게 살면 결국엔 성공한다"라는 누구나 좋아하는 '권선징악'으로 결론을 맺는 사람이나 "여러분이 가난한 것은 못된 부자들 때문이다"와 같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감정적 호소만 하는 사람과 같은 이들의 강연이나 책은 늘 일정 수준 이상의 인기를 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말이 인기를 끄는 것은 단순히 듣기에 좋은 것을 넘어서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이쪽은 좋은 것, 저쪽은 나쁜 것' 혹은 '이쪽은 성공하는 길, 저쪽은 실패하는 길'처럼 단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듣기에 불편하고 어렵다. 선과 악은 생각보다 흐릿하고, 같은 원인이 때로는 성공을 때로는 실패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다수가 바라는 권선징악 그리고 명확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짜 모습이다.


최근에 이렇게 듣기에 불편한 진실을 하는 책 만났다. 바로 김영준의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1838299?LINK=NVB


이 책은 대중이 믿고 있는 혹은 믿고 싶은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는 '권선징악'도 '명확한 공식'도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 남양이 남양해서 망했다?


남양유업은 대리점 갑질 논란과 불가리스 사태 등으로 인해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를 수습하고자 진행한 매각 과정에서조차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남양이 남양했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즉 남양의 비도덕적인 노이즈 마케팅과 네거티브 마케팅 등으로 인해 망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진실은 남양이 남양해서 위기를 겪고 있지만 남양이 남양했기에 지금처럼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홍원식 체제하의 남양유업에 대해서는, 2010년대 이후에 생긴 소비자의 거부감과는 별개로 높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

그뿐 아니라 1994년엔 아인슈타인 우유, 1996년엔 프렌치카페, 2003년 맛있는우유GT, 2005년 17차, 2010년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2011년 초코에몽, 2014년 백미당 등 지금도 주력으로 팔리는 상품들을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분유 기업으로 유명했던 남양유업을 종합 유업 기업으로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개발 능력이 뛰어나고 사업 다각화가 잘 이루어진 현재 남양유업의 모습이 홍원식 회장의 경영하에서 완성된 것이다.

이는 남양유업이 단순히 상품만 잘 만들어서가 아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경쟁사들을 누르는 데 능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선 2세대 경영자인 홍원식 회장은 오히려 1세대 경영자인 김복용 회장과 최명재 회장을 닮은 측면이 있다. 매일유업도, 파스퇴르유업도 1세대 경영자들이 경영일선에 있었을 땐 노이즈 마케팅과 네거티브 마케팅에 매우 능한 모습을 보였다.

- 김영준의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김영사, 2020) 중 -


2. 농심은 '우지파동'으로 1위를 차지한 나쁜 기업이다?


우리나라에서 20년 넘게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라면은 농심의 신라면이다. 농심 신라면 외에도 짜파게티, 육개장, 너구리 등의 인기 라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라면업체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농심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을 만든 삼양식품을 공정한 경쟁이 아닌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겼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엔 '우지파동'이 있다.

우지파동

1989년 11월 3일, '공업용 우지(쇠기름)'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가 서울지방검찰청에 날아들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비식용 우지를 수입한 삼양식품, 오뚜기식품, 서울하인즈[1], 삼립유지[2], 부산유지 등 5개 업체를 적발하고 대표 및 실무 책임자 등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입건하였다.

- 나무위키 중 -


그런데 대중의 인식과는 다르게 농심은  이 사건의 배후에 있지도 않았고 우지파동 전에 이미 삼양식품을 점유율 측면에서 앞질렀다. 

앞서 1980년대의 라면 업계 점유율 추이에서 보았듯이 우지 파동은 잘 나가던 삼양식품을 한순간에 몰락시킨 사건이 아니라 농심이 시장 지배적 기업이 되는 데 일조한 사건이었다. 1980년대에 삼양식품은 상품 개발에서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따라서 우지 파동이 없었다고 해도 그 점유율 차를 좁히긴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중반 라면 시장에 신규 업체들이 등장했을 때, 농심의 점유율은 그대로인데 삼양식품의 점유율만 하락한 점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삼양식품의 경쟁력이 농심과 대등한 수준이었다면 신규 업체가 등장함에 따라 두 기업의 점유율은 같이 감소해야 한다. 하지만 삼양식품만 점유율이 하락했다는 것은 삼양식품의 경쟁력이 농심보다 떨어졌다는 의미다. 

- 김영준의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김영사, 2020) 중 -


3. 카페베네처럼 확장하면 무조건 망한다?


한때 바퀴벌레처럼 빠르게 늘고 그 수도 많다고 해서 '바퀴베네'라 불렸던 카페가 바로 카페베네다. 커피의 맛이나 서비스 측면에서 고객의 큰 호응을 받지 못했던 카페베네가 이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공동대표의 의지 때문이었다.

김선권 대표는 저서에서 자신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수차례 언급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업을 통해 돈을 벌었다고는 하지만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태생적으로 부자인 사람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고 토로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달성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목표점을 지향했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점에서 양적 성장은 대외적으로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목표에 해당한다.


이러한 부분은 강훈 대표에게서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할리스 시절부터 '스타벅스보다 더 큰 카페를 만들겠다'라는 목표를 추구했다고 밝힌다. 여기서 '더 좋은 카페'가 목표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 그리고 그가 스타벅스를 나와 낸 책의 부제가 '스타벅스를 이긴 토종 카페'라는 점은 카페베네가 태생적으로 양적 성장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김영준의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김영사, 2020) 중 -


이렇게 확장에만 신경 쓴 나머지 카페베네는 망했다는 게 대다수의 인식이다. 그런데 카페베네처럼 확장만 신경 쓰면서 운영은 오히려 더 엉망이었던 기업이 있었다. 이 기업의 창업자는 지인의 추천으로 생각 없이 사업을 시작했고, 매장에서 대부분의 고객이 콜라를 훔쳐가는지도 몰랐으며 창업한 지 7년이 지나도 재무제표라는 개념을 잘 몰라서 10만 달러의 손실이 나도 그것을 회계사가 말해줘야 아는 사람이었다. 여러모로 카페베네보다 빠르게 망했어야 할 기업이다. 바로 세계적인 샌드위치 체인점 서브웨이(Subway)다.


프레드 데루카(*서브웨이 창업자)와 김선권 대표(*카페베네 창업자)는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둘 다 어린시절 가난했고 그 와중에 자수성가로 사업을 일궈냈다. 또한 두 사람 다 자신의 사업 아이템에 대한 큰 애착은 없었으며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양적 성장을 그 무엇보다 중요시한 점도 동일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말은 정반대다. 프레드 데루카는 억만장자로 사망했지만 김선권 대표는 연이은 실패로 기업가로서의 커리어를 마감했다. 이 차이는 무엇에서 오는 것일까?

일단 커피와 샌드위치라는 아이템의 특성 차이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퀄리티 컨트롤에서 장점이 있는 샌드위치와 달리 커피는 퀄리티 컨트롤이 매우 까다롭다. 수십 수백 개의 매장에 동일한 품질과 상태의 원두를 공급하는 것도 일이지만 커피의 품질은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의 실력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그 때문에 충분한 직원 교육과 품질 유지에 대한 관리가 뒤따르지 않으면 퀄리티 컨트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또한 비용 측면의 관리가 부실한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샌드위치는 메뉴 하나를 추가하는 데 발생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기존의 재료를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부가적인 재료가 더해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페베네는 커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면서 각각 개별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메뉴를 마구잡이로 늘렸다.

- 김영준의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김영사, 2020) 중 -


이처럼 별생각 없이 고른 아이템의 차이가 카페베네와 서브웨이의 운명을 갈랐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람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이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상당히 위험한 해석이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그렇다(is)'와 '그래야 한다(ought)'를 칼로 자르듯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흄의 기요틴(Hume's Guillotine)이라 불리는 개념이다. 이 개념처럼 '그렇다'를 '그래야 한다'로 '그래야 한다'를 '그렇다'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라는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보기 좋은 거짓말이 보인다. 그리고 이 색안경을 벗어던지면 '그렇다'라는 진실이 보인다.


불편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진실 보고 싶다면 색안경을 벗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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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Photo by Taras Chernu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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