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내 모임에 참석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모임에 오기 전까지 한 번 보고 말 사람들과 무슨 깊은 이야기를 할까 싶었어요. 그냥 본인 어필하고 피상적인 대화나 오갈 줄 알았는데... 정말 인생경험이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여기서 했네요.
이러한 반응은 드물지 않다. 1회성 모임에 처음으로 참여하는 분이 꽤나 자주 밝히는 소감의 유형이다. 즉 처음 보는 사람이자 앞으로 보지 않을 사람과 무슨 대화를 할까 싶었는데, 그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해서 속이 후련하고 기분이 좋았다고 말이다.
이러한 소감을 들을 때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기에,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도 숨기는 것이 많은 편인데 해외여행을 가서 게스트하우스나 관광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때는 그 이유가 해외라는 공간과 여행이 주는 자유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에게는 왜 그 누구에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립하게 되었는데, 최근 읽은 책에서 나의 생각을 조금 더 명료하게 정리한듯한 글을 보게 되었다.
낯선 사람에게는 우리의 내면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 모르는 사람과 있을 때는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즉 지금까지의 내 모습과 내가 추구하는 내 모습 사이에서의 균형 잡기를 잠시나마 재조정할 여지가 생긴다.
친구와 가족은 지금까지의 당신 모습을 안다. 그래서 때로는 당신이 추구하는 모습에 다가가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건 네가 아니야!" "넌 학교 다닐 때 생물을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왜 의사가 되겠다는 거야?" "그냥 네가 코미디언이 되는 건 상상이 안 돼서."
이와 달리 과거의 당신을 모르며, 대개는 미래의 당신도 모를 낯선 사람 앞에서는 이것저것 실험하기가 더 쉽다. 낯선 사람은 우리가 추구하는 모습이 과거의 모습과 동떨어져 있더라도 그것을 시험해 볼 잠깐의 자유를 준다. 낯선 사람은 우리가 새로운 면을 드러낼 기회를 준다. 낯선 사람 앞에서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고, 감추고 싶은 모습을 감추고 나아가 새로운 모습을 발명해 낼 선택의 자유를 누린다
- 프리야 파커의 <모임을 예술로 만드는 법>(방진이 옮김, 원더박스, 2019) 중 -
내 방식대로 해석하자면 '과거의 나'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기준으로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판단하려 한다. 이러한 궤적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나 행동은 그들을 불편하게 하고 또한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나에 대한 그 어떤 궤적도 그리고 있지 않다. 또한 오늘 나눈 이야기를 기초로 미래의 궤적도 상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시 볼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 번 보고 말 사람은 우리에게 어떠한 궤적도 그릴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피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관계가 오히려 본질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거짓으로 꾸며낼 수도 있고, 타인의 자유를 주의 깊게 듣기보다는 본인의 자유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그래서 모임장은 이러한 1회성 모임의 장점과 단점을 고려하여 모임을 설계하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주제를 명확히 하고 그와 관련된 사진이나 물건과 같은 개인 소장품을 준비하게 만들면 이야기의 일관성을 강제하여 거짓을 최소화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와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의 경계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한 번 보고 말 관계는 무한한 자유를 주는 동시에 무한한 방종 또한 허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모임에 맞는 진입 허들(참가비, 독후감, 추천인 제도 등)을 고민해볼 수 있다.
일본 다도를 완성시킨 인물러 일컬어지는 센노 리큐는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을 남겼다. "첫 만남이 곧 마지막 만남"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좋은 모임도 일기일회적인 그래서 걱정도 후회도 없는 모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1회성 모임은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모임이다.
<같이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