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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an 03. 2023

남의 문장과 나의 문장의 경계


말을 참 잘한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유튜브 썸네일에 같이 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유현준과 송길영이었다. 지체 없이 영상을 클릭했다.


https://youtu.be/ME2Zsjk29YI



유현준 교수는 <알쓸신잡>이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전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은 건축가다. 익숙하고 뻔한 것도 그가 말하는 '공간'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 좋은 의미에서 낯설고 신선해진다. 공간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관심이 높아지던 무렵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난 건축가라고 볼 수 있다.


송길영 교수는 유현준 교수보다 조금 더 일찍 그리고 오랫동안 TV를 통해 본인을 알려온 사람이다. 10여 년 전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다음소프트 부사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나온 그의 모습이 나에게는 최초의 기억이다. 사람들이 한창 '빅데이터'에 관심을 가질 때 이것을 가장 대중적으로 잘 풀어낸 사람 중 한 명이다. 현재는 '데이터 마이닝'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기존의 '빅데이터'라는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워낙 말을 잘하다 보니 그냥 멍하니 영상을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의 책을 대부분 읽었던 터라 나에게 내용은 새로울 것이 크게 없었으나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흥미로워 집중해서 보았다. 그런데 살짝 찜찜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나문장'에 관한 내용이었다.



중요합니다. 자기만의 '문장'을 만드는 게.
제가 만든 문장은 "건축 설계는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 유현준 -



근데 보통 명언을 들고 오세요. 남들이 얘기했던 굉장히 훌륭한 아포리즘을 들고 오시는데 그건 내 것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지 않은 걸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있는 거를 가져오는 거는 차용에 불과합니다.

- 송길영 -



왜 찜찜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의 말에서 '나의 문장'과 '남의 문장'의 명확한 경계가 느껴져서였다. 이는 나의 잘못된 해석 오해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경계를 믿지 않는 편이기에 이를 나만의 생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나의 문장'과 '남의 문장'은 디지털의 0과 1처럼 정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날로그처럼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나의 문장'이 타인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100% 나만의 생각인가? '남의 문장'은 오롯이 그 사람만의 문장인가?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나'에게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수 있는 무균실에 있는가? 아마도 이 모든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on/off처럼 명확히 둘로 나뉜 것처럼 보이는 전원도 그 사이에는 찰나의 빛과 어둠이라는 잔상이 개입한다. 그렇기에 '나의 문장' 특히나 '만의 문장'이라는 표현은 나에게는 개운하지 않은 감각으로 다가왔다.


물론 두 사람이 어떠한 의도로 이야기한 것인지는 알고 있다. 남의 생각을 복사-붙여넣기 하는 '카피캣'이 아닌 본인만의 관점을 갖는 '오리지널 타이거'가 되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들의 의도를 고려함과 동시에 내가 찝찝하지 않은 언어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이 될 것 같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문장을 가져라.

- 캡선생 -



내가 뱉는 문장이 공격받을 때 위대한 성인이 말했다고, 절대다수가 그렇게 믿고 있다고 혹은 통계가 그렇다고 책임을 돌리지 않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문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치열하게 오랫동안 비판을 해야 한다. 내가 만든 문장을 내가. 이러한 치열함이 '독창성'과 '설득력'을 모두 갖춘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문장'을 완성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P.S. 오해가 있을 것 같은데 유현준 교수와 송길영 교수 모두 리스펙 한다. 이 글은 애정 어린 시선 정도로 봐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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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Will Franc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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