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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an 18. 2023

직업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와 같이 확률은 50%인데 답하기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그리고 시대마다 답이 달라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숱한 모임에서 이 질문을 20대 참여자에게 받았다. 내가 나이와 사회경험이 더 많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때마다 머릿속에는 두 가지 큰 줄기가 생기곤 했다. 하나는 20대의 가슴을 뛰게 만들 수 있는 "Do what you love" 즉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세요"라는 답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경우 반짝거리는 눈빛과 리스펙을 받을 확률이 높다. 다른 하나는 조금은 현실적인 "잘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세요"라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조금은 차분한 그러나 납득이 된다는 끄덕임을 받을 확률이 높다. 물론 완벽에 가까운 답은 따로 있다. 바로 "잘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이다. 다만 이것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나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마나한 답변이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일단 잘하는 일로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 모든 과목 중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편이라 자연스레 전공도 '영어영문학' 진로도 '영어통번역'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돈을 내는 아마추어의 입장이 아닌 돈을 받는 프로의 입장이 되어보니 '영어를 잘한다'는 나의 생각에 빠르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군어학장교로 근무할 당시 하버드대학교, 예일대학교 등 미국 최상위권 대학 출신의 동기들과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영어' 그리고 '통번역'을 내가 확실히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아마추어 사이에서 '잘한다'와 프로들 사이에서 '잘한다'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도 영어권 국가에서 10년 이상 살다 온 친구들보다 훨씬 더 잘할 자신이 없었다. 이 깨달음으로 커리어를 전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커리어 전환의 시기에도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모닝콜로 설정하면 곧 지겨워지는 모닝콜 효과(Morning Call Effect)'라는 개념을 스스로 만들 정도로 나는 어린 나이부터 꽤나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이라는 개념에 함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돌 가수의 화려한 모습만 보고 그 직업을 선망하는 것처럼, 어떠한 일을 직접 해보고 속속들이 알기 전까지는 내가 그 직업을 '동경하는 것'인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야마구치 슈는 이를 '되고 싶다'와 '하고 싶다'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어떤 직업의 연봉이 높은가, 어떤 직업을 가져야 인기가 많은가 하는 상황은 앞으로 맞이할 세상에서는 더더욱 변화할 것이다. 만약 세간의 평가에 영향을 받아 어떤 직업을 동경하게 되었다면, 언젠가 세상의 평가가 바뀌는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의 동경도 흐지부지 없어지고 만다. 그러한 일은 비극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물음인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관점으로 선택한 직업은 세상의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든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물음은 완전히 별개의 사고방식이다.

- 야마구치 슈의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김윤경 옮김, 김영사, 2021) 중 -


이처럼 커리어 전환의 시기에 '잘하는 일'은 모르겠고 '좋아하는 일'은 답지에 없던 나에게 우연히도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삼성그룹에서 특채를 제안한 것이다. 덕분에 나의 능력에 비해 너무나도 쉽게(?) 삼성그룹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수많은 계열사 중에서 하나의 회사, 그리고 직무 선택만 하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지만 그 당시 선택 기준은 '잘하는 일'도 '좋아하는 일'도 아닌, '가장 여유로워 보이는 일' 일명 꿀보직이었다. 그래서 '삼성물산 패션부문(그 당시 제일모직)'이라는 패션회사의 '마케팅'이라는 직무를 선택했다. 무지한 내가 보기에 가장 여유로워 보이는 회사와 직무였기 때문이다.


입사 후 바로 알게 된 사실은 전혀 여유로운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1년 넘게 일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은 '마케팅'이라는 직무가 내가 잘하는 영역에 가깝고 또한 좋아하는 영역에도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나의 기질에 맞았기 때문이다. '가장 여유로워 보이는'이라는 잘못된 기준으로 정답을 찾게 된 것이다. 길을 잃었더니 가장 빠른 길로 간 격이었다.


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모두 그 일을 하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직업 선택과 관련해서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어렸을 때 다양한 일을 직접 경험해 보면서 적성을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르바이트가 되었건 인턴이 되었건 일단 해봐야 알 수 있다.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사람 간의 관계가 그러하듯 적성에 맞는 일이라도 권태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럴 때는 "Love What You Do(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라)"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잠시 일상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창문을 열지 않고 실내에만 오래 있다 보면 공기가 탁해지듯이, 같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일에 대한 열정도 능률도 탁해지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에는 한 발을 본업에 두고 다른 발을 다양한 경험에 걸쳐보는 피벗(Pivot)형 전환을 통해 환기를 해왔다. 이를테면 본업 외에 '글쓰기', '강연' 등을 한다든지 아니면 가끔씩 예전에 했던 '번역'일을 부업으로 한다든지와 같이 말이다.


아니면 같은 직종이되 회사를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나의 경우에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라는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하다가, 에이전시를 공동창업하여 중소기업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다. 나의 전문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나 그 범주와 방식이 전혀 달라짐으로써 커리어적으로 환기가 되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적성을 찾기 위해서는 일단 다양한 일을 직접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적성을 어느 정도 찾았다면 그 일을 사랑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때때로 권태기가 찾아왔을 때는 본인 나름의 방식으로 환기를 할 필요가 있다.


불이 뜨거운지 아닌지는 만져보지 않고도 알 수 있지만, 어떤 일이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지 아닌지는 보기만 해서는 알기 힘들다. 나를 던져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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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Oliver R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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