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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an 23. 2023

일잘러의 삼단계


최근에 구스노키 겐과 야마구치 슈의 <일을 잘한다는 것>(김윤경 옮김, 리더스북스, 2021)을 읽었다.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도 일을 잘하려고만 했지 '일을 잘한다는 것'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못했기에 이 책의 내용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선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일'은 취미가 아니다. 취미는 자신을 상대로 자신을 위해 하는 행위다. 자신이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에 반해 일이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행위다.

낚시를 예로 들어보자. 같은 시간 동안 같은 고기를 잡는다 해도 어부가 하면 일이지만 낚시꾼이 하면 취미다. 어부는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기를 잡지만, 낚시꾼은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고기를 낚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고객에게 도움이 되어야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고객은 반드시 조직 외부의 사람들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조직 내에도 그 사람의 업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상사나 부하 또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 모두가 고객이며, 그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아야 비로소 그것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성과를 낸다'는 것과 같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고객에게 '이 사람이라면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다. 이 사람이라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신뢰를 받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고객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평가하는 사람이다.

- 구스노키 겐, 야마구치 슈의 <일을 잘한다는 것>(김윤경 옮김, 리더스북, 2021) 중 -


위의 내용을 요약하면 '일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하는 행위'이고 이 과정에서 성과가 나는 것을 '일을 잘한다'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취미의 목적지가 자기만족이라면, 일의 목적지는 타인만족인 것이다. 물론 자기만족도 함께하는 타인만족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 근거해서 '일잘러'를 규정하면, 소수의 사람만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반면에 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일잘러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일을 어떻게든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팀장과 같은 매니저의 경우는 예외다. 그들의 역할 중 하나가 팀원들에게 너무 많은 일이 쏠리지 않도록 유관부서와의 미팅에서 불필요한 일을 쳐내는, 즉 타 부서가 보기에 일을 어떻게든 안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본인이 마땅히 해야 하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타인에게 미루거나 혹은 타인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불충분하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일잘러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일잘러도 삼단계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초급, 중급, 고급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두 저자가 언급한 '시퀀스(sequence)'라는 개념이 이러한 구분법에 큰 도움이 되었다.



1. 그냥 열심히 한다.


A, B, C라는 업무가 주어졌을 때 큰 고민이나 숙고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일의 우선순위와 효율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씩 해내는 것에 급급한 상태다. 대부분 신입사원일 때 이런 식으로 일을 하곤 한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일의 경중을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데 대부분의 신입사원에게는 이러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단계에서는 일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만 성과가 그에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 우선순위를 정해서 한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대부분 우선순위를 두고 일을 하게 된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어느 일이 더 중요한지'와 '어느 일을 더 빨리 처리해야 하는지'와 같은 두 축을 고려하여 정한다. 2단계만 되어도 어느 조직에서건 일잘러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다만 우선순위에 따라서 일을 하다 보면 '인과관계'와 '시간'에 따른 변화를 놓치게 된다. 바로 시퀀스를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3. 시퀀스를 고려해서 일을 한다.


우리가 모두 아는 사실이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하고, 하나가 변함으로써 연계된 모든 것의 상태 또한 변할 수 있음을 말이다.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는 책의 제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커피콩의 생산량이 늘어난다. 커피콩의 생산량이 늘어나면 커피콩의 가격이 떨어진다. 커피콩의 가격이 떨어지면 스타벅스 커피의 원가가 떨어져서 이익이 늘어난다. 그러면 스타벅스의 주식가격은 상승한다.


이처럼 무엇을 먼저 했을 때 다른 일들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고려하면서 일을 할 필요가 있다. 즉 시퀀스를 생각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에서는 시퀀스를  '따귀를 때리고 안아주는 것'과 '안아주고 나서 따귀를 때리는 것'의 차이로 설명했다. 내가 보기에 기분 나쁘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아서 다른 예시를 들고 싶다. '닭갈비를 먹고 나서 볶음밥'을 먹는 시퀀스와 '볶음밥을 먹고 나서 닭갈비'를 먹는 시퀀스의 차이라면 조금 더 공감이 가지 않을까 싶다(이 또한 맛있기는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면 뭐 할 말은 없다).


A, B, C라는 일이 있을 때 A라는 일을 하게 되면 B는 B'로 바뀌게 되고 C는 C'로 바뀌게 된다. 그 변화가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시간의 변화에 따라 그리고 A라는 일을 완성함에 따라 나머지 일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B'를 완수하면 C'는 다시 C''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어떠한 일을 먼저 함으로써 나머지 일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 시퀀스를 고려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잘러 끝판왕의 경지라고도 볼 수 있다.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동일하다. 그리고 이 한정된 시간 내에서 타인만족, 더 구체적으로는 타인의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만족감을 이끌어내는 행위를 누가 더 잘할 수 있는지가 '일잘러'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핵심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퀀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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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Jack H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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