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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an 19. 2023

마케터는 고객의 말을 믿지 않는다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자동차 회사 포드(Ford)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면,
그들은 더 빠른 말을 원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 헨리 포드 -



마케팅을 언급할 때마다 '고객'을 이야기하던 내가 갑자기 '마케터는 고객의 말을 믿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글을 쓰니 의아한 분이 있을 것이다.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과 '고객의 말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의아함은 곧 사라질 것이다. 이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볼까 한다.




1. 고객은 해결책처럼 보이는 페인포인트를 말한다.


헨리 포드의 명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전에 사람들은 대부분 말을 타고 다녔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다면 당연하게도 '자동차'가 아닌 '더 빠른 말'이라는 답이 나왔을 것이다. 깊은 고민이 없다면 현재 이용하고 있는 것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생각하게 되지, 전혀 다른 무언가를 생각해 내기는 힘들다. 즉 그들이 원하는 것의 본질은 '더 빠른 이동수단'이었으나 이것은 이내 '더 빠른 말'이라는 게으른 답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터에게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고객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말이다. 표면적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그 안에 숨은 니즈가 무엇인지를 꿰뚫어서 파악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말한 해결책이 아니라 그 해결책 속에 숨은 페인포인트(Pain point)이다.



2. 고객의 말과 속내가 다를 수 있다.


유튜버를 활용해서 PPL을 진행하고 싶었던 클라이언트가 있었다. 클라이언트는 '구독자 수'가 많은 유튜버를 원했는데, 나는 이것에 함정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구독자 수'는 사람들의 속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숫자임을 말이다.


'교육 채널'과 '성인 채널'을 비교하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 채널의 경우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구독은 하나 제대로 보는 경우는 드물다. 구독이라는 행위가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낭비한다는 죄책감을 덜어주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충족시켜 주는 느낌을 주지만, 막상 시청은 잘하지 않게 된다. 반면에 '성인 채널'의 경우 콘텐츠는 집중해서 보지만 '구독'을 하기에는 심리적 부담감이 있다. 주변에서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쉽사리 구독을 누르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유튜브 채널을 조사하면서 이러한 경향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쉽게 말해 특정 유튜버를 구독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경우에는 구독은 하되 시청은 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부끄럽거나 들키고 싶지 않은 경우에는 구독은 하지 않으나 시청은 많이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패스트푸드 업계이다. 고객들은 몸에 좋은 메뉴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소비하는 주요 메뉴는 몸에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맥도널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마케팅 조사를 해보면 맥도널드 음식은 몸에 안 좋다거나 채소가 부족하다거나, 또는 기름지고 칼로리가 높다는 고객 응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장 잘 팔린 상품이 바로 쿼터파운드였어요.

- 구스노키 겐, 야마구치 슈의 <일을 잘한다는 것>(김윤경 옮김, 리더스북, 2021) 중 -


이처럼 고객의 말과 속내가 다른 경우가 많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말과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속내의 간극은 앞으로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터는 이 간극을 잘 파악해야 한다.



3. 고객은 1명이 아니다.


래퍼 이영지는 장지수의 유튜브 채널에 나와 본인의 MBTI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수기 때는 ENFP, 성수기 때는 ENTP입니다." 아마 이와 비슷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인 중에서도 본인이 회사에서 ESTJ인데,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ESFJ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본인의 성격을 스스로 평가하는 MBTI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한 명의 고객은 상황, 컨디션, 그리고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트렌드코리아 2020>에서는 이를 '멀티 페르소나(Multi Persona)'라고 명명했다. 전 세계 시총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아마존은 이를 간파해서 고객을 1명이 아닌 0.1명 규모로 세그먼트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러한 멀티 페르소나는 세 가지 층으로 나뉜 언어활동으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롤랑 바르트는 이를 '랑그', '스틸', '에크리튀르'로 구분해서 말을 했다.


바르트는 인간의 언어활동을 세 가지 층으로 나누어서 고찰하였다.

첫 번째 층이 '랑그(langue)'이다. 국어 혹은 모국어를 가리킨다. 우리는 어떤 언어 집단 안에서 태어나서 거기에서 말을 배운다. 여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 나는 일본에 태어났기 때문에 일본어 화자로서 언어활동을 시작했다. '국제 공통성을 생각하면 영어가 유리하기 때문에 영어권에 태어나고 싶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두 번째 층이 '스틸(style)'이다. 언어 활용에 있어 '개인적 편향'을 가리킨다. 문장의 길이, 리듬, 음운, 문자의 화상적 인상, 페이지의 여백, 한자 사용 방식 등 언어활동이 신체를 매개로 하는 이상 거기에 생리적이고 심리적인 개인 편차가 발생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어떤 음운을 기피하고 어떤 문자를 선호하고 어떤 리듬을 편하게 느끼는가는 거의 선천적인 것이라 개인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세 번째 층에 '에크리튀르(ecriture)'가 존재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언어의 사용 방식'을 가리킨다.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에 걸맞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발성법도 어휘도 억양도 목소리의 높이도 음량도 규정된다. 나아가 언어 활용에 준해서 표정, 감정 표현, 복장, 머리 모양, 몸동작, 생활습관 그리고 정치 이데올로기, 종교, 사생관, 우주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받는다.

 - 우치다 다쓰루의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박동섭 옮김, 유유, 2022) 중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에크리튀르이다. 정장을 입었을 때와 운동복을 입었을 때 걸음걸이가 달라지듯이 우리는 어떠한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서도 말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무뚝뚝하고 쿨한 직장 상사가 연인과 통화를 할 때 갑자기 곰돌이 푸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고객이 어떠한 에크리튀르에서 말을 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정리해서 말하면 고객은 평면적인 한 명이 아닌, 다면적인 다수임을 고려해서 그들의 말을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이 고객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마케팅을 할 경우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그래서 마케터는 고객의 말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니즈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마케팅은 암호해독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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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Andrej Lišak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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